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환율전쟁으로 확전됐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4년 이후 무려 25년 만이지만 미중 양국 간 무역분쟁은 과거에도 빈번히 벌어졌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반덤핑과 상계관세,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를 수시로 발동해 왔고 중국은 미국을 WTO 분쟁절차에 회부하는 것으로 응수해 왔다.
중국은 미국의 적극적 지지로 WTO에 가입했다. 하지만 중국을 점진적으로 시장경제 체제로 유도해 교역을 늘리고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달리 중국의 공산당 독재 기반은 오히려 강화됐다. 여기에 중국이 경제 발전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경쟁국으로 성장하면서 오바마 정부 때부터 통상적인 무역마찰을 넘어선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화했다.
양국 간 경제전쟁 발발은 정치 상황과도 맞물린다. 중국 내 해외 자금 유입이 늘어도 중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중국 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서 미국 정가에는 강경 대중 무역 정책의 초당적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앞둔 2011년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철강 실린더, 미국산 닭고기를 놓고 양국이 벌인 무역분쟁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을 노린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 게 한 예다. 당시 중국은 부당 관세 부과로 WTO에 미국을 제소했고 최근 WTO 상소기구가 중국의 손을 들어 준 판정이 7년 만에 나오기도 했다.
환율전쟁 역사 역시 미국 내 정치 상황과 연관이 깊다. 1992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 승리를 이끌고도 경제 문제 해결을 앞세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져 재선에 실패했다. 클린턴 정부는 대미 흑자국 중국과 일본 견제에 나섰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1988년 종합무역법을 제정해 환율조작국 지정 근거를 만들었고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중국을 총 다섯 번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5일 미국 재무부의 발표로 중국은 총 여섯 차례나 미국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기록을 갖게 됐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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