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5년 만에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통화 약세→수입 가격 상승→수요 감소→경기 둔화’ 악순환
5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세계 경제가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세계 최강국들이 관세전쟁에서 환율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함에 따라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는 형국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악재까지 더해진 한국의 경우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까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미, 중국과의 무역협상 지렛대로
미국 재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븐 므누신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으로 중국이 환율 조작국이라는 것을 오늘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특정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건 1994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시장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달러=7위안’의 벽이 깨진 데 대한 대응이라는 게 중론이다.
환율조작국 지정만으로는 당장 급격한 변화는 없을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환율조작국 카드를 지렛대로 사용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무역분쟁 과정에서 미국의 관세 압박에 중국 입장에서는 환율 수단(위안화 약세)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미국이 즉각 환율조작국으로 맞대응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향후 1년간 양국이 협상하게 되는데, 중국은 환율제도를 바꾸든지 자본자유화를 하든지, 무역 측면에서 미국 말을 듣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은 당장 세계경제가 휘청일 수 있는 휘발성 강한 사안이다. 글로벌 경기가 하향세인 가운데, 환율전쟁까지 더해지면 불황의 강도는 더 깊어질 수 있다. 그간 미ㆍ중 무역분쟁 여파로 글로벌 교역과 투자가 위축되면서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기관은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1~0.3%포인트 일제히 하향 조정했는데, 더 큰 하방 압력이 생겼다는 얘기다.
환율전쟁의 핵심은 자국 통화가치 하락(상대국 통화가치 상승)을 통한 수출 경쟁력 확보다. 하지만 반대로 수입 가격이 상승해 소비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세계적인 총수요 감소로 전반적인 경기둔화를 야기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맞대응으로 그간 엄포만 날렸던 미국 장기국채를 대거 매각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시중에 풀린 채권을 미국은 양적완화로 거둬들여야 하고 결국 채권가치가 가파르게 하락(금리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조달자금이나 가계 대출의 금리는 폭등으로 이어진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결국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이 전 세계에 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의존도 높은 한국은 더 큰 충격”
대중,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환율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 통화는 약세가 된다.
이는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을 빠져나갈 구실이 된다. 글로벌 교역 감소와 일본 수출 규제로 주력 기업의 영업이익이 줄어들면 기업 신용이 낮아져 기업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미중 분쟁으로 중국 경기까지 침체할 경우 대중 수출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실물 시장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실장은 “미중 간 관세전쟁에 이은 환율전쟁은 하나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세계 교역은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교역 감소는 투자, 소비 위축으로 연결되는 간접효과를 가져오는데 경제에 미치는 파괴력이 훨씬 커 우리 경제에는 상당한 악재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는 특히 미중 무역분쟁의 직격탄을 받아 수출 규모가 급감한 데다 일본 수출규제까지 더해지면서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며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2.4~2.5%)는 달성하기 어렵고, 한국은행의 성장률 전망치(2.2%)라도 달성하면 선방했다고 평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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