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지리적 중심 아닌 일본인 밀집 거주지역 의미”

서울 중구가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 불매운동을 상징하는 ‘노 재팬(NO Japan)’ 배너 설치를 강행하자 역사학자 전우용이 “한심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전씨는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서울 중구청이 관내에 ‘No Japan’ 배너 1,100개를 걸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결정에 반대한다”며 중구의 역사를 설명했다.
전씨에 따르면 서울에 중구가 생긴 건 일제 강점기인 1943년 행정구역이 남부ㆍ서부 등 부 단위에서 종로구 등 ‘구제(區制)’로 바뀌면서부터다. 그는 “중구가 있으면 동서남북구도 있어야 정상인데, 중구에만 ‘경성부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담았다”며 “여기가 당시 서울의 지리적 중심이 아니라 문화적 중심, 곧 일본인 밀집 거류지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의 명동은 과거 금융 중심지이자 유흥업소 밀집 지대였다. 경성의 5대 백화점 중 4개가 중구에 있었다”며 “당시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모여 사는 곳이 경성의, 나아가 조선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중구(中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덧붙였다.
중구라는 명칭이 식민지 잔재라는 지적은 20여 년 전 일본인 학자가 먼저 주장했다고 한다. 전씨에 따르면 일본인 학자는 “식민 잔재 청산을 논하면서 일본인들이 자기 동네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건 모순”이라며 대안으로 남산구나 남대문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구청 관계자들에게 명칭 변경을 건의했지만, 모두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며 “그나마 조금 성의가 있는 사람은 ‘중구라는 이름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높은데 아무리 식민지 잔재라도 뭐하러 바꾸느냐, 당장 구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거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구청의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중구청이 NO Japan 배너를 내걸려면, 당장 자기네 구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며 “NO Japan 배너가 펄럭이는 곳에 일식집 간판이 함께 보이면,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도 일본인 학자와 같은 황당함을 느끼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또 “시민들은 얼마든지 NO Japan을 외칠 수 있다. 그러나 관청이 그래서는 안 된다”며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에 관청이 편승하려 드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이고, 자기 동네에 남은 ‘일제 잔재’가 뭔지도 모르면서 NO Japan 배너를 걸겠다는 것도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중구는 5일 태극기와 함께 일본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거부를 뜻하는 ‘노(보이콧) 재팬-NO(Boycott)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배너기 1,100개를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등 관내 22개 대로 가로등에 내걸겠다고 밝혔다. 비판 민원이 속출하는 등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6일 오전부터 세종대로 일대 등에 ‘NO Japan’배너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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