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촉진법과 달리 지정 근거 없이 대미 무역흑자국이면 지정 가능
제재도 훨씬 광범위… 25년 묵혀둔 카드, 1달러당 7위안 넘자 던져
미국 재무부가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4년 이후 처음이다. 전날 위안ㆍ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한 데 따른 보복 조치로 풀이된다.
25년 만에 미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근거법은 ‘종합무역법’이다. 그간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근거법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정한 ‘교역촉진법’이었다. 교역촉진법상 지정 기준은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국내총생산(GDP) 2%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지속적인 일방향 외환시장개입(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6개월 지속 순매수)로, 이들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한다.
미국은 올해 경상흑자 요건을 기존 3%에서 2%로, 외환시장개입 요건을 순매수 8개월 지속에서 6개월 지속으로 각각 바꿔 환율조작국 기준을 강화하고 평가대상국가도 기존 13개국에서 21개국으로 확대했지만 요건을 충족한 국가는 없었다.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 요건 1개만 충족했으나 그 규모가 4,190억달러에 달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 재무부는 이날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교역촉진법과 달리 종합무역법은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자체가 없다. 대미 무역흑자국이면 곧바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돼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종합무역법에 따라 1988~89년 2년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적이 있고, 대만(88~92년), 중국(92~94년)도 이 법에 의해 환율조작국이 됐다. 다만 미국 정부는 이후 25년간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환율조작국을 지정한 적이 없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실상 사문화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되살려 국가 안보를 철강 관세 부과 명분으로 꺼내든 것처럼, 20년 넘게 묵혀뒀던 종합무역법 카드로 중국을 환율조작국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종합무역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에 지정할 경우 보다 광범위한 제재가 가능하다. 교역촉진법은 △대외원조 관련 자금지원 금지 △정부 조달계약 금지 △국제통화기금(IMF) 추가 감시요청 등의 제재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는 반면, 종합무역법은 ‘해당 국가의 경제 및 환율 정책을 압박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에 대해 교역촉진법에 명시된 제재에 더해 교역ㆍ투자 분야에서 지급하는 정부보조금이나 광범위한 비관세장벽 등을 철폐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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