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미국에 수출하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때렸다. 미국이 네덜란드를 통해 싼값에 홍차를 수입하자 영국은 법으로 이를 금지했다. 분노한 미국인들은 영국 배를 기습하여 차 상자를 모조리 보스턴 항에 던져버렸다. 영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국은 보스턴 항을 폐쇄해 버렸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졌고 1781년 마침내 영국이 항복했다. 영국에 반감이 생긴 미국인은 홍차 대신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커피 마실래.” “카페인은 몸에 안 좋아. 그냥 홍차 마셔.” “홍차에도 카페인 있어. 녹차로 해.” 며칠 전 카페에서 목격한 대화 장면이다. 차례대로 딸-아빠-엄마의 이야기다.

카페인은 알칼로이드의 일종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염기성(알칼리)인 경우가 많다. 탄소, 수소, 산소뿐만 아니라 질소가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다. 화학물질이라면 일단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알칼로이드’란 말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들릴 수 있다. 따라서 카페인도 왠지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DNA, RNA의 주요 성분인 구아닌과 아데닌 염기와 비슷한 물질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카페인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한다. 성인에게 독성이 일어나려면 하루에 10g은 먹어야 하는데, 커피 한 잔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0.05~0.40g 정도니 연한 커피는 하루 200잔, 아무리 독한 커피라고 해도 25잔은 먹어야 문제가 된다.

아마도 대학생 딸은 카페인이 필요했던 것 같다. 공부나 업무에 지친 사람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정신이 들고 기분이 좋아지고 들뜨는 경험을 한다.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바로 이 각성 효과 때문이다.

아빠와 엄마가 딸에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카페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무시무시한 물질을 즐겨 먹더라도 자식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는 것이 어른의 당연한 마음이다. 부모 마음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카페인은 뇌로 가는 혈관을 수축시켜서 혈류량을 줄인다. 따라서 카페인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다가 어느 날 그만두면 머리로 가는 혈류량이 늘어나서 두통이 생긴다. 또 카페인은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의 효과를 방해한다. 아데노신은 각성을 억제하고 잠을 잘 오게 하는 물질이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 효과 때문에 우리는 커피를 즐기기도 하고, 또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커피를 피하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린이와 청소년이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커피는 좋지 않다. 하지만 카페인 때문에 커피 대신 홍차를 권하는 아빠의 처방은 썩 옳지 않다. 왜냐하면 홍차에도 잔 당 0.03g 정도의 카페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처방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흔한 오해와 달리 녹차 안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은 사방에 널려 있다. 특히 콜라에는 홍차보다 카페인이 훨씬 많이 들어 있다.)

원래 홍차와 녹차는 같은 식물에서 나온다. 사과를 잘랐을 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까닭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서 산화되기 때문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수확한 찻잎이 숙성하면서 산화되어 검붉은 색의 홍차가 된다. 녹차가 초록색을 유지하는 이유는 산화작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찻잎을 따자마자 가열해서 산화효소가 작용하지 못하게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왜 홍차나 녹차를 마시면 커피를 마실 때만큼 각성효과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홍차에는 테아닌이 들어 있다. 테아닌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면서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상대적으로 감소시킨다. 물론 테아닌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정신과 몸에 나쁜 영향을 준다. 녹차에는 카테킨이 들어 있다. 카테킨은 녹차의 떫은맛을 내는 물질이다. 흔히 타닌이라고도 한다. 카테킨은 카페인의 흡수를 막아준다. 아직 카테킨의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판단이 상대적으로 옳았다. 녹차에도 카페인은 있지만 카페인의 부작용이 가장 적게 나타난다. 문제는 카페인의 각성효과 역시 가장 적어서 딸의 필요를 전혀 충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

산업혁명기 영국은 늘 수인성 질병이 문제였다. 노동자들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맥주 안의 알코올이 골칫거리였다. 흐느적거리며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때 홍차가 눈에 들어왔다. 홍차에는 항균 성분이 있어서 펄펄 끓는 물로 우리지 않아도 수인성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매력적이었다.

영국의 차는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영국은 미국에 수출하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때렸다. 미국이 네덜란드를 통해 싼값에 홍차를 수입하자 영국은 법으로 이를 금지했다. 1773년 12월 분노한 미국인들은 영국 배를 기습하여 차 상자를 모조리 보스턴 항에 던져버렸다. 얼마나 많았던지 바닷물이 온통 붉은 홍차 색깔이 되었다. 영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774년 영국은 보스턴 항을 폐쇄해 버렸다. 그리고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1776년 독립을 선언했고 1781년 마침내 영국이 항복했다. 영국에 반감이 생긴 미국인은 홍차 대신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홍차와 미국 독립전쟁은 일본의 경제침탈에 맞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이 있다. 홍차를 버릴 때 걱정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커피 맛이 처음부터 좋았겠는가?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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