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미국에서 잇따르고 있는 총격 사건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주말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에서 각각 벌어진 총기 참사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대응 방식도 문제 삼은 것이다. 특히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선 언급을 극도로 자제했던 그가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지 몇 시간 후에 사실상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모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의 특징이어야 할 관용과 다양성의 가치를 갖고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공포와 증오의 분위기를 충족시키거나 인종차별주의적 정서를 정상적인 것처럼 만드는 지도자들,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마시하거나 이민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삶의 방식을 위협한다는 식으로 암시하는 지도자들, 다른 이들을 인간 이하로 간주하거나 미국이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속한다고 암시하는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오와 혐오, 분열, 배제를 불러일으키는 수사를 일삼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러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러한 말들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곳 미국과 전 세계의 역사에 걸쳐 발생한 대부분 비극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라면서 과거 미국의 노예 제도와 흑인차별 정책,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르완다 집단학살, 발칸 반도의 인종 청소 등을 그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그것들은 우리의 정치와 공적 생활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며 “어떤 인종과 신념, 정파를 가졌든지 (지금은) 선한 의지를 가진 대다수 미국 국민이 명백히 이야기할 때”라고 역설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총기 규제 강화론도 직접 펼쳤다. 그는 “지구상 어떤 나라도 총기 난사의 빈도 면에서 미국을 따라오지 못한다”면서 “어떤 선진국도 우리 수준으로 총기 폭력을 용인하진 않는다”고 허술한 미국의 총기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이 지점에서 무기력하지 않다”며 “우리가 떨치고 일어나 공직자들이 우리의 총기규제법 개정에 나서도록 할 때까지는 이런 비극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이번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 “트럼프의 수사와 백인 우월주의 운동의 언어,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경고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2017년 초 퇴임 이후 가장 강력한 정치적 성명”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에도 자신의 행정부에 몸을 담았던 아프리카계 관료 149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을 비판한 공동 기고문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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