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업체들이 택시 업체들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카풀 서비스 등으로 갈등을 빚어왔던 두 곳이 손을 잡고,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택시-플랫폼 상생 종합방안’에 발맞춘 한국형 모빌리티 서비스 모델이 하나 둘씩 선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적극적은 곳은 최근 서울 강남구 소재 법인택시회사 진화택시를 인수하기로 한 카카오다. 진화택시는 법인택시 면허 90여대를 보유하고 있는 중형 업체인데, 카카오는 기존 플랫폼 택시 ‘웨이고블루’를 운영한 노하우를 살려 진화택시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웨이고블루는 카카오가 50여개 법인택시회사로 꾸려진 타고솔루션즈와 함께 올해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서비스로 자동 배차 기능을 통해 ‘승차거부 없는 택시’를 내세우고 있다. 회원 수만 2,200만명에 달하는 카카오T 앱에서 차량 호출 시 다양한 택시 종류 중 하나로 웨이고블루를 선택할 수 있어 사용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높다. 여기에 타고솔루션즈는 연내 카시트 등이 장착돼 있는 여성 전용 택시 ‘웨이고레이디’도 출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진화택시가 카카오T 내에서 새로운 옷을 입는다면 같은 플랫폼 내에서 즉시 배차나 여성 전용, 애완동물 운송, 심부름 전용 등 여러 가지 선택지가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택시기사들이 가장 크게 적대감을 드러냈던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를 운영하는 쏘카도 준고급택시 호출 서비스 ‘타다 프리미엄’을 위해 면허 50대 규모 중형택시 회사 덕왕운수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 중이다. 2월 타다 프리미엄 출시 계획을 발표한 뒤 조합원 징계까지 불사한 택시단체의 조직적 반대에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웠던 쏘카 측은 여러 차례 서비스 연기 끝에 지난달 힘겹게 기사 14명으로 겨우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덕왕운수가 쏘카 측과 함께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타다가 택시업체와 손잡은 첫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도가 높다. 쏘카 관계자는 “검토 중인 것은 맞지만, 인수는 아니다”라면서 “이런 방식으로 택시와 계속해서 상생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업체간 상생 움직임은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택시제도 개편안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앞으로 허용할 세 가지 택시 플랫폼 사업 중 ‘가맹사업’이 현실적으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는 게 모빌리티 업체들의 공통된 얘기다. ‘플랫폼 운송사업’이 △수익의 일부를 사회적 기여금으로 납부하고 △정부로부터 차량 대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넘어야 할 벽이 높은 데 반해, 가맹택시사업의 경우 웨이고블루 사례처럼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다는 것이다. 택시업계 입장에서도 해가 될 게 없다. 2022년 사납금제가 폐지되고 법인택시 월급제가 시작되면 개별 법인 영업보다는 브랜드 가치에 기대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결국 규모가 작은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모빌리티 업체들이 택시회사를 사들이거나 가맹을 맺는 방식으로 점유율을 크게 높여놓고 나면 작은 스타트업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나기 쉽다는 것이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토부 개편안으로) 시장이 새롭게 재편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지만 이마저도 대기업 손바닥”이라며 “이런 식으로라면 우버나 디디추싱과 같은 혁신 모빌리티 기업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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