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평화조정자로서의 美 리더십 약화” 지적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악화 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그간 동맹국의 평화조정자(peacemaker)를 자처해온 미국의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동맹국 간 갈등을 방치하면서 자국의 안보 불안까지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국 내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과 일본의 불화가 심화되고 있지만 미국은 갈등을 중재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고 보도했다. 실제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국의 요청이 있다면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분쟁의 심판 역할을 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라며 전면에 나서기 꺼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신문은 미 국무부 관계자들도 “한일 양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지난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양국간 화해를 도모했지만 이마저 늑장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는 “과거 미 행정부는 이런 상황이 미국의 안보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를 비공식적으로라도 양국에 보내곤 했다”며 “폼페이오 장관도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에 미국의 동맹국이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이 자체적으로 갈등의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별한 계기 없이는 한국과 일본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체면 구기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단거리라 문제없다”고 일축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를 양국이 원할지도 의문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미국에 도움을 청할 경우 ‘궁핍한 속국’으로 비칠 것을 걱정한다는 추측도 나왔다. 후지사키 이치로(藤崎一郞) 전 주미 일본대사는 “큰 형, 큰 누나에게 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한일 모두에게 좋지 않다”라며 “우리가 끼어들어 ‘멕시코에 더 우호적으로 대하라’고 요구하면 미국도 기분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동아시아 동맹국 간 갈등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보니 S 글레이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선임 연구원은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한일 양국 간 협력과 한반도에 대한 억지력 강화를 위해 애써온 미국의 노력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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