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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출신 양향자 “한국 반도체 미래 노린 일본에 소름 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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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출신 양향자 “한국 반도체 미래 노린 일본에 소름 끼쳐”

입력
2019.08.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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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이 영입한 여상 출신 반도체 전문가 

 “4차 산업혁명 패권전쟁…비굴하게 갈 필요 없어” 

양향자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지난달 26일 경기 과천시 공무원인재개발원 과천분원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홍윤기 인턴기자
양향자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지난달 26일 경기 과천시 공무원인재개발원 과천분원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홍윤기 인턴기자

일본이 예고대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시키면서 양국 관계가 ‘시계 제로’ 상황이다. 그 누구도 파장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양향자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은 “앞으로의 4차 산업혁명에서 누가 패권을 쥐느냐 패권전쟁이자, 전 세계적인 경제전쟁이 시작됐다”고 했다. 양 전 원장은 삼성전자에서 30여년간 일하며 플래시메모리 설계ㆍ감수팀을 이끌었던 반도체 전문가다. 지난달 30일 원장직을 사임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에 합류했다.

특위 합류를 앞둔 지난달 26일 인재개발원 과천본원에서 만난 양 전 원장은 “일본의 목적은 국내 반도체산업의 현재가 아니고 미래를 때리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달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결정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동시에 타격한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찾아 ‘대한민국 반도체 비전 선포’ 발언을 통해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육성 계획을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인 삼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한국을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양 전 원장은 “이 발표가 일본에 상당한 자극이 됐을 수 있다”며 “이어 판문점 회담까지 열려 남ㆍ북ㆍ미 정상이 만났는데, 여기에 끼지 못해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강력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당초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공정과 비메모리 분야의 첨단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193나노 미만)만 수출 규제 품목으로 삼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양 전 원장은 이를 두고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겨냥한 영악한 타기팅(Targeting)”이라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메모리 반도체에 문제가 생기면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전 세계가 단기간에 문제가 일어난다는 점을 (일본 정부는) 알았다”며 “그래서 정말 영악하게 메모리는 두고 비메모리에 대한 정밀 타격에 나섰다”고 했다.

일본이 일으킨 이른바 경제대전에서 향후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양 전 원장은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비굴하게 갈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설사 당장은 지금보다 힘들어지더라도 일본의 경제보복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인재 개발과 교육 시스템 등의 필요성을 우리나라 전체가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 원장은 “과거 세계사를 보더라도 기술이 없으면 강대국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며 “기술 패권을 빼앗긴다면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의 식민지 역할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첨단 기업들이 앞다퉈 쓰고자 하는 기술력을 이번 기회에 확보해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주도면밀한 논리를 내세워 일본에 대한 압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전 원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의 기술자문 역할을 했던 하마다 시게타가 박사와 지난달 21일 만난 데 이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이후에도 긴밀하게 연락하며 대책 마련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소개했다. 과거 하마다 박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 당시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양 전 원장이 통역 안내를 맡으며 맺은 인연이다. 양 전 원장은 “하마다 박사는 국민 감정을 일단 내려놓고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서 수출한) 전략물자가 군사물자로 쓰이지 않는다는 서류 작업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한일의 경제갈등 국면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변수로는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는 미국의 역할을 꼽았다. 중국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미국으로선 한국이 반도체 패권을 전부 가져가는 것이 ‘아메리카 퍼스트’, 즉 미국 제일주의에 부합하는지 일단 관망하고 있다는 게 양 전 원장의 분석이다. 양 전 원장은 “(미국 정부는) 앞으로 반도체 및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산업지형 재편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등이 어떤 형태로 기술패권을 가져가는 것이 미국의 방향성에 맞는지 국제질서를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계속 가져가는 것이 맞겠다고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전 원장은 광주여상을 졸업한 뒤 1985년 삼성반도체에 연구원 보조로 입사했다. 이후 설계팀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 부장 등을 거쳐 삼성전자 첫 고졸 출신 여성 상무라는 이른바 고졸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그러다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학력과 지역, 성별 차별을 극복한 인물로 직접 당에 영입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는 2016년 4월 20대 총선 당시 광주 서구을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천정배 당시 국민의당 공동대표에게 밀려 낙선했고, 이후 공무원인재개발원장을 지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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