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한국당 가려면 혼자” 직격… 유 “허위사실 비난 깊은 유감”
바른미래당의 분당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손학규 대표를 포함한 당권파는 분당 의사를 공론화하진 않지만, 9월 중순 추석 연휴 이전 결별 시나리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최근 들어 바른정당계(비당권파) 대한 공격 수위를 끌어올리는 이유다. 비당권파가 ‘손 대표 퇴진’ 요구를 접지 않는 한 결별이 불가피하며, 손익 계산상 분당이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 당권파의 판단이다.
손 대표는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가려면 혼자 가라”며 바른정당계 수장 격인 유승민 전 대표를 직격했다. 손 대표는 “바른정당계가 ‘손학규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당을 개혁보수로 잘 포장한 뒤 한국당과 통합할 때 몸값을 받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을 훌쩍 건너버린’ 발언이었다. 두문불출하던 유 전 대표도 참지 않았다. 그는 “손 대표가 허위사실로 저를 비난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손 대표의 발언은 한마디로 ‘내가 싫으면 당을 떠나라’는 뜻이다. 손 대표의 측근은 “비당권파에 보내는 최후통첩”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비당권파를 징계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작정이라고 한다. 이달 중순쯤엔 자신이 당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총선 비전 등을 담은 ‘손학규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권파가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은 ‘집안 정리’를 해야 내년 총선을 준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당권파 최고위원들이 당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를 계속 보이콧하고 있는 탓에, 손 대표가 주도하는 총선기획단 설치 등이 헛돌고 있다.
당권파는 이상적 분당 시나리오로 ‘합의 이혼 방식’을 꼽는다. 비당권파와 함께 하겠다는 비례대표 의원들을 조건 없이 출당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비례대표 의원은 자진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소속 정당에서 출당을 당하면 의원직을 지킬 수 있다.
당권파는 이미 계산기를 두드려 본 것 같다. 국회법은 ‘정당이 분당되면 당 간판을 승계한 정당이 자산을 모두 차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쌓여있는 정당 국고보조금 등을 당권파가 독식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달 14일 지급되는 3분기 정당보조금을 합하면, 바른미래당의 자산은 약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5일 현재 당 소속 의원은 28명으로,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가 모두 떠나도 13명이 남는다. 민주평화당과의 통합이나 일부 의원 흡수를 통해 원내 교섭단체(소속 의원 20명) 지위를 무난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당권파의 계산이다.
그러나 비당권파가 빈손으로 당을 떠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계개편이나 선거연대 등 논의가 본격화할 때까지는 바른미래당 지붕 아래 있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당 복당을 희망하는 의원들도 “맨몸으로 들어갔다간 공천은 꿈도 못 꾼다”고 선을 긋고 있다. 양측의 불신이 워낙 깊은 만큼, 결별 논의 자체가 성사되지 못하고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손 대표가 나가야지, 당을 만든 우리가 왜 나가겠느냐”며 “손 대표 퇴진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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