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마무리 하재훈

마무리 투수 하재훈(29)은 올해 독주 체제를 갖춘 SK가 건진 최고의 수확이다. 이번 시즌 개막 전만 해도 구단 코칭스태프는 야수에서 투수로 처음 풀타임을 뛰는 ‘늦깎이 신인’ 하재훈에게 거는 기대가 높지 않았다. 그저 중간 계투 요원으로 1이닝 정도를 책임져주기를 바랐던 하재훈은 시즌 초반에 필승조에 자리잡더니 4월말엔 마무리까지 꿰찼다.
마무리 보직은 잘해야 본전이고,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큰 자리다. 하지만 하재훈은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무서운 속도로 세이브를 쌓았다. 4월말 KT전에서 2개의 세이브를 수확한 이후 5월 10개, 6월 6개, 7월 7개, 8월5일 현재 1개를 보탰다. 총 26세이브로 2위 NC 원종현(24세이브)에게 2개 차로 앞선 부문 1위다.
1일 인천에서 만난 하재훈은 “한 경기, 한 경기 하다 보니까 여기(세이브 1위)까지 왔다”며 “현재 기록은 시즌 전에 전혀 생각도 못한 수치”라고 놀라워했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그는 SK 구단의 역사도 새로 쓸 수 있다. SK 마무리 투수의 최다 세이브 기록은 2003년 조웅천과 2012년 정우람이 작성한 30세이브다.
하재훈은 높은 승률(0.670)을 기록 중인 팀이 40경기를 남겨 놓고 있어 무난히 30세이브 벽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또 ‘투수 초보’ 딱지를 떼고 팀 승리를 지켜낸 것은 그에겐 큰 경험이다. 하재훈은 “마무리라고 딱히 힘든 건 없다”며 “점점 적응이 돼가는 단계라 초반보다 좀 더 편하고 익숙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힘이 조금 떨어질 때가 됐기에 웨이트 트레이닝 등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뒷문지기로서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시속 150㎞에 달하는 묵직한 직구와 실점 위기에도 표정 변화가 없는 포커페이스다. 문득 ‘끝판왕’ 오승환(전 콜로라도)의 향기가 나는 대목이다. 지나간 일을 마음 속에 담아두지 않고 금방 훌훌 털어낼 만큼 멘탈도 강하다. 지난 6월 23일 두산전에서 3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이 멈췄을 때도, 7월 7일 두산전에서 패전 투수가 됐을 때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아직 ‘멘붕(멘탈붕괴)’이 온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하재훈은 “점수를 주면 주는 거고, 안타를 맞으면 맞는 거다. 어떻게 점수를 안 주고, 안타를 안 맞을 수가 있겠나. 기술은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잘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으로 하재훈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손꼽히는 오승환에게 조언을 틈틈이 받는다. 오승환이 삼성에 복귀하면 다음 시즌부터는 그라운드에서 상대로 마주할 수도 있다. 하재훈은 “정말 좋아하는 선배가 내 주위에 있는 자체가 복”이라며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은 공을 던지는 것보다 힘든 법인데, 난 운이 참 좋다. 내년에 오승환 선배가 실전에서 던지는 걸 눈앞에서 보면 더 배울 수 있고, 느끼는 점도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천=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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