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협회 심층인터뷰...“실패 용인하는 연구개발 지원, 국내 수요처 확대 필요”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중소벤처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부품ㆍ소재 개발에 성공해도 납품할 곳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물건이 있어도 팔 곳이 없다는 의미다.
벤처기업협회는 지난 달 17일부터 25일까지 관련 중소기업 335개사를 대상으로 일본 수출 규제와 관련한 심층 인터뷰와 설문을 진행했다.
심층 인터뷰 결과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은 ‘판로’였다. 정부가 부품ㆍ소재의 국산화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국산화에 성공해도 판로가 생기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A사는 “대기업에서 일본 부품을 쓰도록 지정하고 있어 납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 부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국내기업이 생산한 국산화 제품과 기술에 대해 정부가 강제하여 납품 쿼터를 지정해 국산화 기술과 제품이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사는 “과거 대기업으로부터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 국내로 다시 우회 납품하는 방식을 권유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 국적 기업으로는 대기업이 물건을 사주지 않으니 미국 법인으로 우회하라는 황당한 권유였다. B사는 “국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인식 전환이 최우선”이라며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 중인 벤처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 구매까지 이어지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벤처협회 측은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개발 지원과 국내 수요처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벤처협회는 설문의 경우 수출규제 3개 품목(불화수소, 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관련 기업(14개), 화이트리스트 제외 추가 규제 관련 기업(48개), 향후 각국의 무역규제 관련 기업(243개) 등 세 분야로 나눠 진행했다.
세 분야 기업 모두 일본의 수출 규제가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80~90%를 차지했다. 수출 규제가 지속될 경우 기업이 감내 가능한 최대 기간은 6개월이라는 응답이 38~40%로 가장 높았다.
수출 규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책은 ‘수입선 다변화’(32~38%)’, ‘신제품 개발’(24~25%),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 확대’(21~24%), ‘긴축 재정’(4.2~4.8%) 등의 순이었다. 정부에 희망하는 대응책은 ‘제조 및 기술벤처 육성을 위한 투자자금 지원 및 R&D 지원’(70~75%)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고 ‘경영안정자금 및 세제징수 유예 등 지원’(16%), ‘수출입 제품 및 기술 인증 관련 규제 개선’(4~13%) 등이 뒤를 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이 된 3개 품목의 국산화 가능 여부에 대해 ‘3~4년 내 국산화가 가능하다’(42.9%)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1~2년 내 국산화 가능’(35.7%), ‘5~10년 내 국산화 가능’의 순이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대해 기업 스스로 감내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62.5%), ‘스스로 가능하다’(25.0%), ‘정부의 도움이 있어도 불가능하다’(12.5%)였다.
안건준 벤처협회장은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동등하게 협력해 벤처기업이 장기간 R&D를 통해 개발한 제품으로 대기업의 기술수준을 배가시키는 ‘팀 코리아(Team Korea)’ 전략의 필요성을 수 년 전부터 호소했는데 더욱 아쉬움이 크다”며 “수출 규제가 단기적으로 관련 기업에게 위기임지만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기술력 및 혁신역량을 보유한 벤처기업을 육성해 핵심소재 국산화를 이뤄내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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