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미스코리아 ‘선(善)’ 우희준
▲나이: 25세
▲학교: 울산대학교
▲장래희망: 보병 특전사 장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라"
저희 아버지는 과거에 태권도 선수를 하셨고, 현재는 강력계 형사로 계세요. 세상을 뒤흔든 성폭행 사건의 범인을 잡은 게 아버지이기도 하시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제게 "너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라"는 가르침을 주셨어요. 워낙 사건 사고도 많고 누구보다 위험성을 잘 아시다 보니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어릴 때부터 체력을 기르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땐 육상선수를 하다가 스턴드 치어리딩을 했고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3위와 4위를 두 번 했죠. 세계 대회에 나가다 보니,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게 답답하더라고요. 운동선수지만 영어를 공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영어를 잘하셔서 그 영향으로 어느 정도는 했는데, 직접 해외에 나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 허락을 받고, 미국으로 가서 홈스테이를 했어요. 사실 유학 가서 1년을 있어도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거든요. 저는 누가 시켜서 간 게 아니다 보니 훨씬 더 열심히 했고 영어가 많이 늘어서 왔어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홍콩 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통역도 제가 바로 하고 인터뷰도 영어로 하고 그랬거든요.
-인생은 도전의 연속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관광공사 채용 공고가 뜬 거에요. 선생님이 '너가 영어를 제일 잘하니까 나가봐라' 해서 지원했는데 합격을 했어요. 그래서 '최연소 정직원'이 됐답니다. 월급도 많이 받았어요. 하하.
당시에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도 합격을 했는데 일과 학교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대학은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관광공사에선 영어 통역 일을 맡아서 저도 좋았고 부모님도 좋아하셨어요. 그때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서 일을 그만두신 상황이었는데 제가 일을 하면 동생도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 되니까 그렇게 선택을 했죠. 그런데 6개월 동안 그 일을 하다보니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 적성엔 안 맞더라고요. 제가 운동을 해서 그런지 답답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그만두게 됐죠.
그동안 번 돈으로 세계 여행을 갔어요. 혼자 인도에 한달 동안 여행을 갔는데 치안도 안 좋고 가지 말라는 주위의 조언이 많았어요. 하지만 전 어딜 가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 생각했기 때문에 용감하게 떠났습니다.
-카바디와의 운명적 만남
인도에 가서 카바디라는 운동을 처음 접했어요. 한국에 온 뒤에 알아보니, 2008년도부터 카바디 협회가 생겼더라고요. 제가 육상선수도 했으니까 트라이아웃 식으로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순발력이 좋아서 금방 배우니까 코치님이 '한 번 해보라' 하셔서 상비군에 소속돼 1년을 했어요.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었는데 선출이 됐고 4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을 했죠. 인도 여행을 안 갔으면 이 운동을 절대 몰랐을 거에요.
카바디는 제 운명이었던 거 같아요. 해보니까 잘 맞고, 잘 했거든요. 처음엔 길게 생각을 안 했는데 아시안게임까지 바라보게 됐죠. 그러면서 대학도 가게 됐고요. 훈련소가 부산이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가 없었고, 울산대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주전으로 뽑혀서 나갔고, 주니어팀 주장을 맡았어요. 최소 동메달을 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마지막에 점수차로 판가름했는데 4위로 밀려나서 메달을 못 땄어요.
카바디가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까 메달을 한 번 따면 훨씬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됐을텐데 아쉬웠죠. 훈련소도 따로 없고 협회 운동장 작은 곳에서 운동하고, 정말 목숨 걸고 했는데 좋은 결과를 못 내서 슬펐어요.
-편견을 깨기 위해 출전한 미스코리아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오기 전까지 훈련을 계속 했어요. 처음엔 카바디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영향력이 있는 대회에 나와서 카바디 선수라고 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운동선수고 군인이다 보니까 저를 향한 편견이 많아요. '나는 군인이지만 도전의식이 있고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미스코리아 부산·울산 대회에 가 보니 출전자들이 다 너무 예쁜 거에요. 당연히 떨어질 줄 알고 엄마, 아빠한테도 말을 안 해서 아무도 안 왔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 '선'에 당선이 됐죠. 본선 무대도 나갈지 말지 고민을 했어요. 한달 동안 합숙을 해야 하는데 저는 운동을 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편견에 맞서는 좋은 기회다 보니까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미스코리아가 군인 이미지랑도 안 맞을 수 있잖아요. 저의 목표와 출전 의도 등을 설명하고 간신히 허락을 얻었죠.
사실 전 위장크림만 바를 줄 알지, 화장을 해본 적도 없어요. 훈련 받을 땐 입술도 못 바르고 바를 시간도 없죠. 합숙소에선 직접 화장을 해야 했는데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화면에서 내가 얼마나 못생겼을까' 하는 걱정도 됐고요. 본선 대회 때는 '선'으로 호명이 되어서 '이름이 잘못 써있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니까요. 간절히 바라니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신기했죠.
-앞으로의 꿈
미스코리아 당선은 제 인생을 바꿔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카바디에 관련된 취재 연락도 오고, 학군사관에 관심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해요. 선배들이 좋게 봐주셔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신분을 잃지 않고 군인과 운동선수로서 멋진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미스코리아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싶은데, 일단 운동 쪽으로 영상 콘텐츠를 찍고 싶어요. 카바디 운동 하는 법을 찍어서 소개하는 영상도 만들고 싶고요. 제가 외국어 실력이 있으니, 중국어나 영어로 녹음도 하고 자막도 넣어서 다양한 외국인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해외 미인 대회에 출전해보라는 제안도 받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미스코리아 활동이 끝난 뒤엔 특전사 장교를 하고 싶어요. 한미연합사령부로 가서 한미동맹에 관련된 일도 해보고 싶고요. 코리아 타임즈랑 외교적인 행사도 같이 하고 싶고, 영어로 사회도 많이 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좋은 경험들을 하고 싶습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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