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비행사의 지존은 당연히 최초 동력 비행(1903)과 고정익 항공기 제작(1905)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지만, 그들에게 비행의 꿈과 용기를 심어준 이들은 신화시대의 이카루스 이래로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형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 1867~1912)가 인정했듯이, 독일 발명가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986)만큼 직접적으로 영감과 기술적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는 없었다. 릴리엔탈은 인류 최초로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를 탄 인간이 공기 중에 떠서 유의미한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인물이다.
프로이센의 앙클람(Anklam)이란 곳에서 태어난 릴리엔탈은 한 살 터울 동생(Gustav, 1849~1933)과 함께 유년기부터 비행을 동경했다고 한다. 새들의 비상을 관찰하며 날개 형태와 공기 역학을 탐구했다는 그는 포츠담 기술학교에서 2년 과정의 기계역학을 전공한 뒤 베를린왕립기술아카데미를 졸업, 슈바르츠고프 컴퍼니라는 회사의 디자인 엔지니어가 됐다. 그는 1867년 보불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뒤 보일러와 증기 엔진을 제작하는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기술적 기량뿐 아니라 창의적 재능도 탁월했던 그는 만 48년을 사는 동안 25개의 기계 관련 특허를 획득했다. 그렇게 특허와 사업으로 번 돈을 몽땅 글라이더 제작에 쏟아 부었다.
그는 1891년 ‘데르비처(Derwitzer)’라 명명한 18kg짜리 글라이더를 타고 인공 둔덕을 이륙해 약 25m를 비행한 이래 1896년 마지막 비행까지 16개의 각기 다른 모델의 글라이더로 약 2,000여차례 도전했다. 1893년 리노 힐스(Rhinow Hills) 비행 땐 장장 250m를 날기도 했다. 그는 독일과 유럽은 물론이고 라이트 형제가 살던 미국 인디애나주 리치먼드에까지 알려진, 인류 최초의 ‘플라잉 맨 Flying Man’이었다.
릴리엔탈은 1896년 8월 9일 리노 힐스에서 모두 4차례 비행했고, 마지막 도전에서 글라이드 고장으로 15m 상공에서 추락해 다음날 숨졌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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