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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히스패닉' 또 증오범죄… 텍사스 쇼핑몰서 총기난사 2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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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히스패닉' 또 증오범죄… 텍사스 쇼핑몰서 총기난사 20명 사망

입력
2019.08.04 17:58
수정
2019.08.05 01:4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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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도 안 돼 오하이오서도 총격 사건, 용의자 포함 10명 숨져

미국, 일주일 만에 또… 주말 연이틀 총기난사로 총 30명 사망

3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월마트 매장에서 총격이 벌어지자 놀란 시민들이 급히 대피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3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월마트 매장에서 총격이 벌어지자 놀란 시민들이 급히 대피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州) 국경도시 엘패소의 한 월마트 매장에서 3일(현지시간) 오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최소 20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다. 이튿날 새벽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도 총격 사건이 일어나 용의자를 포함해 10명이 사망하고, 최소 16명이 부상당했다. 지난달 27, 28일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주 길로이의 지역 행사 도중 총격 사건이 각각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또다시 미국의 평온한 주말 일상이 난데없는 총성과 함께 악몽의 순간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엘패소 참사의 경우 최근 30년간 벌어진 미국의 역대 총격 사건들 가운데 일곱 번째로 사망자 수가 많은 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급격히 확산된 반(反)이민 정서와 인종주의가 유발한 ‘증오 범죄’로 보인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미 민주당 일각에선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책임을 묻는 비판마저 나오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멕시코와 접한 대표적 국경도시인 엘패소의 한 대형 쇼핑몰 내 월마트 매장에서 이날 오전 10시40분쯤 총격이 시작됐다. 목격자인 마누엘 우루처투(20)는 긴 소총을 든 용의자 모습을 봤다면서 “도망치던 순간, 바닥에 시신 2구가 쓰러져 있었다. 아이와 노인 모두 충격에 빠져 비명을 질렀고, 생후 6~8개월쯤 된 아기의 배도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NYT에 전했다. 현지 주민 바네사 사엔스(37)는 WP에 “총격범은 검은색 티셔츠, 귀마개를 착용하고, 무작위로 총을 쐈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자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됐다.

3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한 쇼핑몰 내 월마트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뒤, 충격에 빠진 월마트 직원들이 망연자실해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엘패소=AP 연합뉴스
3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한 쇼핑몰 내 월마트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뒤, 충격에 빠진 월마트 직원들이 망연자실해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엘패소=AP 연합뉴스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사건 발생 7시간 후 “20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쳤다”고 공식 발표했다. NYT는 이날 참극을 ‘대량학살(Massacre)’이라고 규정했다. 사상자 중에는 멕시코인 9명(3명 사망, 6명 부상)도 포함됐는데, WP는 “부상자 명단에는 10세의 멕시코 소녀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는 “우리 국민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무차별 총기 난사라기보다는 이민자들, 특히 히스패닉계를 타깃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범인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21)가 범행에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 ‘에이트챈(8chan)’에 올린 4쪽짜리 성명서에는 이번 총격이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성명에서 그는 “히스패닉이 내가 사랑하는 텍사스 주정부와 지방정부를 장악할 것이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했다. “미국이 내부에서부터 부패하고 있다” “텍사스주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인구로 인해 이곳은 민주당의 텃밭이 될 것” 등과 같은 반이민, 반민주당 정서도 드러냈다. 아울러 유럽인들의 후손이 다른 인종에 압도당하고 있다는 백인우월주의 음모론인 ‘대전환(The Great Replacement)’도 언급했고, 지난 3월 51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격 테러범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레그 앨런 엘패소 경찰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텍사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시기가 도래했다”며 “증오 범죄와의 연계성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크루시어스의 성명서에 대해 NYT는 “히스패닉계가 미국에서 권력을 잡는 데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보여 준다”고 해석했다. CNN방송은 “미 연방수사국(FBI)도 국내 테러 수사를 개시했다”고 전했다.

최근 30년간 미국 내 주요 총격 사건. 그래픽=신동준 기자
최근 30년간 미국 내 주요 총격 사건. 그래픽=신동준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날 참사를 ‘끔찍한 총격’이라고 표현한 뒤 “비극적일 뿐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나는 오늘의 증오에 찬 행동을 규탄하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에 동조한다”면서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결과적으로 이 같은 ‘증오 범죄’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하긴 힘들어 보인다. 엘패소가 지역구인 베로니카 에스코바르(민주) 하원의원은 “증오와 반이민 정서가 (이번) 학살의 원동력”이라며 “(용의자의) 선언문은 증오와 인종차별주의, 편협함, 분열로 촉발됐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적 수사(rhetoric)가 폭력을 유발한다면서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며, 그가 이 나라의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사회의 총기 규제 논의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은 일제히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WP는 “월마트는 세계 최대의 총기 소매 업체”라며 “총기 통제 논쟁에서 상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4일 새벽 1시쯤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오리건 지구에서 또다시 26명의 사상자를 낳은 총격 사건이 일어난 사실에도 미국 사회는 경악하고 있다. 오하이오 사건의 범행 동기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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