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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캐슬, 사실은] 영장 발부 오해 피하려 친구도 안 만나는 ‘법원의 수도승’

입력
2019.08.05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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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영장전담판사, 그들이 사는 세상

※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서울중앙지법 출입구에 설치된 포토라인. 거물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 등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면, 법원에 설치된 포토라인에 서서 소감이나 혐의에 관련한 해명 등을 말하게 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중앙지법 출입구에 설치된 포토라인. 거물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 등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면, 법원에 설치된 포토라인에 서서 소감이나 혐의에 관련한 해명 등을 말하게 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직 대통령, 기업 총수, 연예인 등에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세상 눈길은 온통 영장전담판사에게 쏠린다. 수사가 속도전으로 갈 지, 불구속 수사의 지리한 ‘밀당’이 벌어질지 결정할 이가 바로 법원에서 종일 영장만 들여다 보는 영장전담판사들이다.

영장 발부 여부는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라, 영장전담판사 결정 하나에 사건 관계자들이 일희일비하고 여론은 격렬한 반응을 내놓는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건에서 영장이 기각되면 영장전담판사는 각종 커넥션과 적폐의 오명을 혼자 뒤집어 쓰는 공공의 적이 된다. 실시간 검색어에 판사 이름이 오르고, 신상털기가 시작되며, 판사를 탄핵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온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들의 실제 일과나 일하는 방식은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법원에 상주하는 기자들도 접하기 어렵고, 심지어 같은 법관들조차 영장전담판사를 만날 일은 드물다. 외압을 피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 수도승을 자처하는 영장전담판사들의 속사정을 알아 봤다.

◇워라밸은 포기, 낮엔 심문 밤엔 고민

영장전담판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원 내 엘리트 코스였다. 1년만 고생하면 고법 부장판사 승진이 보장되다 보니 탐내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영장전담이 사고를 치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가 되기 때문에 법원도 매우 신경을 쓰는 자리”라며 “형사사건에 잔뼈가 굵고 법리에 밝으며 근무평정이 상위권이고 평판도 좋은 판사를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고법 부장 승진제도가 사라진데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예전만큼 영장전담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영장전담판사의 하루는 기록 정독, 심문, 결정의 반복이다. 오전 10시 미체포 피의자 심문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보다 한두 시간 일찍 나와 기록을 살핀다. 심문이 길어질 때가 많아 점심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웬만하면 다른 영장전담의 심문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함께 먹는다. 2시에 시작되는 오후 심문에선 주로 체포 피의자를 심문한다. 6시쯤 심문이 끝나면 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변호인들이 7시나 8시쯤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하기 때문에, 온전히 기록에 집중하는 건 저녁식사 이후 가능하다. 구속영장 발부ㆍ기각 결정은 자정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촌각을 다투는 때도 많고, 일정이 늦어지면 여기저기서 재촉이 쏟아진다. 함께 일하는 실무관들은 예정된 심문 일정 사이사이 새 일정을 배치하고, 서둘러야 하는 사건은 ‘긴급’이라 알리며 판사들을 재촉한다. 공보판사를 통해 마감에 쫓긴 기자들의 독촉, 판사실 앞에 대기하는 경찰관의 무언의 압박도 쏟아진다.

◇피의자도 가지각색… “읍소는 안 통해요”

구속될지 몰라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한 피의자와 얼굴을 맞대는 일은 베테랑 판사에게도 쉽지 않다. 피의자들은 두려움에 대개는 선처를 구하기 급급한데,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은 ‘병’이다. “건강이 좋지 않으니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것인데, 영장전담판사를 지낸 법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가장 안 통하는 읍소이기도 하다. 구속사유가 명백한데 아프다고 풀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엄살이 지나친 피의자에겐 “이제 시작이니 마음 단단히 먹으시라”고 딱 잘라 말해주기도 한단다.

사정이 딱한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영장전담을 지낸 한 법관은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50대 가장을 요즘도 떠올린다. 이 피의자는 심문 도중 구속을 짐작하고 “도망가지 않을 테니 딸 얼굴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읍소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체포돼 가족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잡혀 왔다. 그를 심문했던 판사는 “꼭 돌아오겠다고 정말 간절히 애원했고 사정이 안타까웠지만, 횡령액이 크고 실형선고가 명백해 구속이 불가피했다”며 “이런 날은 결정 이후에도 계속 마음이 좋지 않다”고 털어놨다.

엉뚱한 호소를 하거나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절도 혐의로 붙잡혀 온 한 남성은 “부업으로 대필을 하고 있는데, 잠깐 풀어주면 대필 중이던 원고를 마감하고 오겠다”고 읍소했으나 구속됐다. 심문을 마치고 번잡스러운 사이를 틈타 법정 내 창문을 깨고 도주한 절도미수범은 도주 및 공용물건손상 등의 혐의가 추가돼 구속됐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일절 말하지 않아 구속된 노숙자도 있다. 이 노숙자를 심문했던 판사는 “벌금형으로 끝날 사건인데, 신원파악이 안돼 구속할 수밖에 없었다”며 “너무 황당해서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인생을 좌우하는 일… 말 못할 외로움ㆍ부담감

그들의 마음이 가장 무거워지는 때는 소년범을 심문할 때다. 수사기관도 웬만하면 미성년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데, 일단 영장이 청구된 사건은 대부분 강력범죄다. 이런 아이들 대부분은 전과가 두세 개 이상인 경우가 많고, 보살필 가족이 없다. 수도권 법원에서 영장전담을 맡았던 한 판사는 “환경이 나빠 악순환을 반복하는 아이들이 많아, 영장을 발부하면서도 어른으로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혼자서 하루에 수십번 결정을 홀로 내리고 그 결정이 누군가 인생을 좌우하는 만큼 심적인 부담은 매우 크다. 그 어떤 판사보다 보안이 철저히 요구돼 영장을 맡은 1년여 동안은 같은 법원 내 다른 판사들과도 연락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사법연수원 동기 모임은 물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도 만남을 자제한다. 사건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을뿐더러, 법조계 사람들과의 만남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은 오롯이 스스로 감내할 몫이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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