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미성년자, 사후피임약

입력
2019.08.05 04:40
27면
0 0
의사는 위기가 찾아온 청소년들 앞에 무엇인가 결정하는 어른으로 그 자리에 있다. 사회는 그들을 억압할 뿐, 피임 방법조차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병원까지 용기내 찾아올 정도라면,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파악하고 있는 청소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어른이 외면하면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의사는 위기가 찾아온 청소년들 앞에 무엇인가 결정하는 어른으로 그 자리에 있다. 사회는 그들을 억압할 뿐, 피임 방법조차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병원까지 용기내 찾아올 정도라면,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파악하고 있는 청소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어른이 외면하면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응급실에서 가장 비응급인 환자는 어떤 환자일까. 보편적인 환자군에서는 아무래도 사후피임약 처방을 위한 환자일 것이다. 이들은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은 상태다. 진료가 늦어진다고 당장 상태가 악화되거나 통증이 심해지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간단한 문진을 하고 주의사항과 함께 복용할 약을 처방하기만 하면 된다. 보통의 비응급 환자는 바삐 돌아가는 응급실 의사의 투정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휴일이나 야간에 응급실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절실해서, 의사는 그들의 응급실 방문을 절대적으로 이해한다. 만약 필요한 경우라면 언제든 편하게 가까운 응급실을 방문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저번에는 이런 비응급 환자가 왔다. 하지만 간단히 해결할 수 없었다. 환자가 미성년자였던 것이다. 나름대로 성인 보호자를 동반한다고 남자친구와 같이 왔다. 환자는 고등학교 고학년이었으며, 남자친구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로 보였다. 당연히 법적 혼인관계는 아니었다. 둘은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요구 사항을 정확히 전달했다.

응급실의 미성년자는 대체로 부모와 함께 방문한다. 하지만 가끔 미성년자가 혈연관계가 아닌 보호자와 오거나 혼자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부모에게 연락해 자녀의 상태를 알리고, 검사와 치료의 동의를 구한 뒤 시작한다. 당연한 원칙이다. 하지만 환자는 당연히 부모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절차를 말하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약을 처방해야 할까, 아니면 안 된다고 돌려보내야 할까.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현실적으로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면 처방을 해주지 않는 편이 일반적이다. 법정대리인에게 통지하는 것이 늘 해오던 원칙이고, 드물게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눈앞에서 돌려보내는 환자보다, 나중에 사실을 안 부모가 찾아와 아이를 마음대로 진료하고 처방했느냐고 따져 물을 경우가 더 두렵다. 솔직히 의사로서 마음이 편하려면 부모를 언급하고 그냥 돌려보내면 된다.

하지만 사정을 헤아리고 처방을 내주는 쪽도 있다. 환자에게 상황을 간략히 털어놓고, 약의 부작용과 복용 방법만을 설명하고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모든 상황에서 옳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환자는 부모가 아니라 청소년 본인이다. 그들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생명이 위태로운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청소년에게도 성적 결정권이 있고, 자기 판단하에 이루어진 관계는 처벌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모에게 알린다면, 환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결정일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어차피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 처방받을 때까지.

의사는 위기가 찾아온 그들 앞에 무엇인가 결정하는 어른으로 그 자리에 있다. 사회는 그들을 억압할 뿐, 피임 방법조차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병원까지 용기내 찾아올 정도라면,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파악하고 있는 청소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어른이 외면하면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청소년기의 나도 불완전했다. 일탈하고 싶었고 반항하고 싶었다. 반면 그 행동에 큰 처벌이 떨어지거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어른들은 때로 놀라울 정도로 관대했다. 그 몇 번의 관대함으로 나는 위기를 넘어서 성인이 되었다. 종종 그 관대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영영 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불완전한 시기에 몇 번의 이해를 받고 결국은 극복하며 성장하는 일. 그 어른들이 누구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다행히 그 우여곡절을 통과해 이 사회의 성인이 되었다. 기억에 남지 않는 관대한 어른이 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