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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형병원 환자 쏠림은 착시?

입력
2019.08.05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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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려면 석 달씩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한시가 급한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2,700병상을 갖춘 국내 최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폐암 환자 김모(76)씨는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은 환자들로 항상 북새통이다. 2년 전보다 외래 대기환자가 2,3배나 늘어난 이들 병원에선 영상 장비를 24시간 내내 가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MRI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기 위해 입원 환자는 1개월, 외래 환자는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촬영한 영상자료를 판독하는데도 1개월 넘게 걸린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암 환자의 경우 암세포가 어떻게 퍼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MRI와 CT를 빨리 찍어 진단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3개월씩이나 기다려야 한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수술도 문제다. 수술방을 64개나 갖춘 서울아산병원도 몰려드는 환자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은 쉴 틈이 없다. 새벽 7시부터 밤 10시가 넘도록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도 있다. 의사들의 과로 누적으로 환자의 안전이 위험해질까 걱정이다.

빅5 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은 진료비 비중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빅5 병원의 진료비는 지난해 4조6,531억원으로 전년보다 5,663억원이 늘었다. 전체 의료기관에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비 가운데 빅5 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8.5%나 된다. 병ㆍ의원급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급여비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대형 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은 건강보험 적용 항목이 크게 늘어나고 선택진료비(특진비)가 폐지되면서, 위급하거나 중증질환이 아닌데도 무조건 대형병원을 찾는 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빅5 병원을 비롯한 43개 상급종합병원에 가벼운 질환의 환자까지 몰리면서 긴급하게 치료해야 할 중증질환 환자를 제때 치료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제발 감기 환자 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형 종합병원 교수들의 푸념까지 나온다.

대형 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은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목표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을 시행하면서 예견된 일이다. 물론 이전에도 대형 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은 있었지만 2,3인 입원실이나 MRI의 보험 급여화 등을 통해 의료비 부담을 크게 줄이는 문재인 케어로 더 뚜렷해졌다는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비 부담이 별반 다르지 않다면 빅5 병원 등에서 명의의 진료를 받으려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료비 부담으로 대형 종합병원에 가지 못했던 중증환자들이 문재인 케어 덕분에 가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잘못된 쏠림이 아니라 ‘착한 쏠림’”이라는 말까지 한다.

그렇지만 빅5 병원을 비롯한 대형 종합병원에만 환자가 넘쳐나면서 암 등 중증질환은 상급종합병원에서, 감기나 초기 고혈압 등 가벼운 질환은 동네 병ㆍ의원에서 치료한다는 의료전달체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지방에도 대형 종합병원이 있지만 빅5 병원 등 서울로만 환자가 몰리니 지역간 불균형도 심해지고, 지방 의사들도 환자가 줄면서 수도권 대형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국가적으로도 손해”라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다. 공공의료 확충,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종합적인 노력을 통해 대형 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대형 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은 착시”라고 말하지만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늦을수록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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