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암리 새마을지도자 박은영씨
계곡 지리 안내에 보은군 수색 처음 주장
“아우 너무 좋지. 은누리가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정말 기적 같아.”
청주의 야산에서 실종됐던 조은누리(14)양이 10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지난 2일 오후 충북대병원 로비에서 만난 박은영(58)씨는 어린애같이 해맑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박씨는 좌절과 답답함이 교차하며 11일 동안 계속됐던 조양 수색 현장과 조양 가족의 텐트를 쉼 없이 오갔던 사람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누구보다 앞장섰던 그였기에 당연히 조양 가족인 줄 알았는데 충북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뒤 반전이 벌어졌다. 가족들만 면회가 허용된 응급실 병동에 들어가지 못해 복도에서 서성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은누리와는 한번도 본적 없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란다. 생판 남인 박씨가 생업까지 내팽개치고 조양 수색에 뛰어든 사연은 이랬다.
박씨는 평균 연령이 73세인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 마을의 막내다. 청주시내에서 치킨호프집을 운영했던 그는 6년 전 사업을 접고 내암리로 귀촌했다. 2년쯤 지나선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새마을지도자’가 됐다.
동네 인근에서 실종사고가 난 첫날 박씨는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다. 청주 토박이 경찰관들도 잘 모르는 내암리 계곡 일대를 안내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박씨 이외엔 대안이 없었다. 내암리에서 나고 자란 마을 어른들은 대부분 여든을 넘겼다.
본업인 ‘용달’ 일은 뒷전으로 미뤘다. 박씨는 매일 마을과 가족텐트, 수색현장을 오갔고 아침ㆍ점심ㆍ저녁마다 한번씩 진행된 수색전략회의에도 참석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갔는데 나중엔 지리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경찰도 나한테 물어보고, 은누리 아빠도 나한테 물어보고 그러니 차마 빠질 수 없더라고. 집이 가까우니까 은누리 엄마도 하루 자고, 아빠도 며칠 자고 그러면서 좀 더 끈끈해졌지.”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찾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온 듯 박씨는 또 한번 헤헤 웃었다.
조양의 가족은 물론, 수색에 나섰던 경찰들도 인근 지리에 밝은 박씨 도움이 없었다면 제때 조양을 찾기 힘들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조양이 산 정상 너머 보은군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가장 먼저 주장한 사람도 박씨였다. 결과적으로 조양은 520고지 너머에 있는 보은군 회인면 신문리 산 35번지에서 발견됐다.
“나는 왠지 은누리가 산을 넘어갔을 것 같더라고. 엄마랑 헤어져서 내려오다 막상 혼자 있으려니 심심했을 거야. 그렇게 다시 산길을 올랐다면 벌목장 쪽 길이 제일 헷갈리거든.”
그래도 박씨는 조양 구조에 5,7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하며 수색에 나선 경찰과 군에 공을 돌렸다. 그는 “전문가니까 ‘이렇게 하자’고 통보만 할 줄 알았는데, 우리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어줬다”며 “대한민국이 이렇게 좋은 나라라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조양의 어머니도 박씨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데는 적극적이었다. 그는 “첫날 오후 오셔서 며칠 동안 일도 안 나가고 도우셨다. 지리를 모를 때 많이 도와주셨고 본인이 모를 때는 다른 분을 연결해주셨다”고 밝혔다. 또 “실종 첫날 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저를 재워주기도 하셨는데, 그 고마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박씨는 희망 없는 수색에 가족들이 지쳐갔을 때 “은누리 찾으면 돼지 한 마리 잡아서 다같이 우리 집 마당에서 파티를 하자”고 위로하기도 했다. 그 말도 너무 고마웠던 조양의 어머니는 조양 구조 뒤 이렇게 말했다. “이제 파티를 할 수 있겠어요.”
청주=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