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죽글러브, 산업용 PU코팅장갑, 라텍스 코팅장갑 등 100여 종 장갑 생산
2011년 4월, 남색 점퍼를 입은 남자 한 명이 송죽글러브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정선희(58)송죽글러브 대표에게 “우리 회사에서 장갑을 대량으로 구매하려고 하는데 제품을 보고 싶다”면서 공장을 둘러본 뒤 시제품과 함께 ISO, 벤처 관련 인증서 등을 복사해서 돌아갔다.
그즈음 송죽글러브는 폐업을 고민해야 할 만큼 힘든 상황이었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습으로 제조업 분야가 초토화되던 즈음이었고 장갑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봄, 중국산 장갑의 불량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른바 ‘장갑 파동’이 일었지만 그것이 송죽글러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대세는 어차피 중국산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대자동차 구매팀입니다.”
며칠 후, 송죽글러브에 직원을 파견했던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은 “송죽이 2009년 8월에 설립한 3년차 신생기업이긴 하지만 기술도 탄탄하고 ISO와 벤처 인증 등에서 큰 점수를 받았다”면서 “송죽글러브 제품을 현대와 기아차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공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말 그대로 노를 손에서 놓을까 고민하던 중에 물이 쏟아져 들어온 셈이었다.
이듬해부터 상복이 터졌다. 2013년에 ‘경상북도 신성장기업’ 10개에 포함됐고, 2014년에는 4개 기업만 선발하는 경상북도 일자리창출 우수기업에 뽑혔다. 정 대표는 “저가 제품에 맞서 기술과 품질로 승부한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진흙 속의 진주를 알아봐 준 기업 관계자들과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경상북도와 성주군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의 가장 든든한 ‘언덕’은 남편 허민(60)회장이다. 허 회장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갑에 매달린 ‘장갑 장인’이다. 정 대표는 “오랜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면편직 및 내구성이 강한 코팅 기술력이 송죽글러브의 성장 동력”이라고 밝혔다.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처럼 남편은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저는 자금 및 제품, 직원 관리 등 전체적인 관리를 하며 회사를 운영해왔습니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현재 송죽글러브는 산업용 PU코팅장갑, 라텍스 코팅장갑, 특수장갑, 기타 면장갑 등 100여 종의 장갑을 생산하고 있다. 그 사이 직원이 40여명으로 늘었고 제2, 제3공장까지 설립해 연매출 50억을 돌파했다. 또한 미국, 일본, 브라질 등에 10억원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그 사이 한번 더 고비가 있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기는 문제로 고민했다. 베트남이 주목을 받으면서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이 늘었고 장갑 제조업체 중에도 베트남에 투자한 기업이 적지 않다. 이웃에서 공장을 하던 경영인이 “우리 공장 옆에 좋은 땅이 있다”면서 권유했다. 최저임금 상승까지 겹쳐 국내 공장을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1년 넘게 베트남을 오가며 공장부지를 물색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한국에 남기로 결심했다. 제일 눈에 밟힌 것이 직원들이었다.
“회사직원 중 50%가 장애인입니다. 지금까지 장갑 만들어서 먹고살았는데, 훌쩍 가버리면 이 친구들을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늘 마음에 맴돌았어요. 직원들에게 늘 ‘할 수 있다는 의지, 하면 된다는 열정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면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그 말을 저에게 돌렸죠. 없던 힘도 불쑥 솟아나더군요!”
기술력과 품질로 정면승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두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국내 1위를 차지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다 적극적인 세계 시장 공략이다. 현재 중동 지역을 1차 목표로 정했다.
“차근차근 밟아서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지금처럼 하루하루 나아지려고 고군분투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위치에 올라서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의욕이 용솟음치는 일이 있었다. 3달 전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니트릴부타디엔고무(nitrile-butadiene rubber)로 제작한 ‘NBR 장갑’이 그것이다. 고급 요가 매트에 쓰는 고무를 장갑에 적용한 제품으로 그립감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물류센터 하적 작업 같은 간단한 용도부터 정전기를 잡아야 하는 전기ㆍ전자 관련 작업이나 기름 작업을 할 때는 물론이고 레저ㆍ등산용으로도 최고의 적합성을 자랑한다. 정 대표는 “보물을 손에 쥔 기분”이라면서 “마케팅만 받쳐주면 최고의 성과를 낼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에 따르면 장갑의 미래는 무한히 밝다. 지금은 장갑의 시대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맨손으로 하던 작업을 대부분 장갑을 끼고 수행한다. 세계 시장을 놓고 봤을 때 이제 막 장갑의 보급이 시작된 나라도 많고, 선진국에서도 보다 착용감이 좋고 작업 용도에 적합한 장갑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지금만 해도 반도체 작업에 특화된 장갑을 비롯해 자동차 회사에만도 작업 분야에 따라 수십 가지 종류의 장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었다.
“장갑의 카테고리는 인간의 활동 영역만큼이나 넓습니다.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손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품질관리부터 연구개발까지 늘 노력하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탄탄한 송죽글러브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성주발 장갑 한류를 기대해 주십시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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