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영화 ‘청년경찰’이 개봉했을 때 누구도 565만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2년 후 영화 ‘사자’는 개봉도 하기 전 일찍부터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배우 박서준(31)을 바라보는 시선도 어느새 ‘가능성’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블록버스터 전쟁터’인 여름 극장가에서 박서준은 ‘믿을 만한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청년경찰’ 상영이 마무리될 즈음 제안을 받았어요. 새롭게 도전해 볼 만한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과 함께 신작 ‘사자’로 돌아온 박서준을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했다.
‘사자’에서 박서준은 초월적 힘을 지닌 격투기 선수 용후를 연기한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신을 원망해 온 용후는 구마 사제 안 신부(안성기)를 만나 세상을 위협하는 악령에 맞서면서 점차 자신에게 주어진 신앙적 소명을 깨닫는다. 박서준은 인간 본성의 어둠을 파고드는 내면 연기로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어 간다. ‘청년경찰’을 비롯해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와 KBS ‘쌈, 마이웨이’(2017) 등에서 보여 준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가 한층 무르익었다. 그는 “부담이 됐거나 자신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자’는 오컬트와 액션을 넘나든다. 상상력이 동원돼야 하는 장르이지만, 생활 연기로 다져진 박서준은 무리 없이 설득한다. “격투기는 스킨십이 많은 운동이니까 용후는 사회성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과거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을 만큼 심지도 단단하고요. 그렇게 하나씩 캐릭터를 완성해 가다 보니 나중엔 용후가 자장면을 먹을 땐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지더군요. 용후가 예수상을 바라볼 때는 어떤 눈빛일까, 안 신부에게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제 옷을 입었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 감정 변화의 강도를 정말 많이 고민하며 찍었어요.”
악령에 씐 부마자를 대면하고도 용후는 놀라지 않는다. 눈빛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번민을 드러낼 뿐이다. 박서준은 “기괴한 상황에 맞닥뜨려도 용후는 그다지 동요할 것 같지 않았다”며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방법을 고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정제된 연기는 숱한 시도와 선택, 포기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카메라 각도와 고개의 움직임까지 정밀하게 설계하되 “절대로 안전한 선택은 하지 말자”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내 연기를 다시 보면 당연히 아쉽지만 당시엔 최선이었다”며 “어느 때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용후가 신의 선택을 받아들인 이후부터 ‘사자’는 슈퍼히어로물로 또 한 번 옷을 갈아 입는다. 마블이나 DC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악의 세계관’이 장르 변화를 떠받친다. 어릴 적 즐겨 본 히어로물에 영향을 받았다는 박서준은 “이 영화를 찍으며 울버린(로건)의 쓸쓸한 뒷모습을 종종 떠올렸다”며 “긴 호흡으로 영웅의 탄생부터 퇴장까지 보여 줄 수 있는 시리즈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서준이 ‘울버린’에 끌린 건 요즘 그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배우의 영향력을 무거운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대중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며 위안을 얻거나 새로운 감흥을 느끼기도 할 테고요. 그게 눈물이든 웃음이든 사회적 메시지이든, 좋은 영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최근에는 예능프로그램보다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요.” 영향력이라는 것도 결국은 서로 주고 받는 일이다. 주변의 기대 어린 시선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제가 보기와 달리 겁이 굉장히 많아요. 선택과 행동도 조심스러운 편이고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이유죠.”
차기작은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다. 동명 웹툰을 토대로 청춘의 패기와 도전을 그린다. 박서준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캐릭터라 이미지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새 캐릭터에 맞게 머리카락도 시원하게 밀어 보고 싶다”고 살짝 귀띔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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