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제소는 당장 효과 어려워… 정부, 국제 무대서 여론적 지속
방사능 문제 겨냥 식품 검역 확대… 지소미아 연장 거부도 파장 예고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조치에 문재인 대통령이 ‘맞불’을 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우리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조치를 시작으로 대(對)일본 수출 제한 같은 강경한 반격 카드가 단계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도 맞대응 카드로 거론된다. 그러나 모든 압박 수단 동원은 일본이 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어서 외교적 해법 모색을 위한 접촉 역시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준비되고 있다. 더불어 국제 무대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과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하는 국제 여론전도 지속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등가(等價) 대응에도 정부가 착수한다. 최종 판정까지 2년가량 걸리는 WTO 제소의 경우 당장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까다롭게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이날 관광과 식품, 폐기물 등 분야부터 안전 조치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의 취약 지점인 방사능 문제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한 방사능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과 다름없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교부가 도쿄(東京) 등 일본 내 여행 자제 지역을 선포하고 △일본산 식품류에 대한 검역을 전수 조사로 확대하는 한편 △공산품에 대해서도 안전 검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맞대응 카드로 꼽았다.
일본으로의 수출 제한 조치와 더불어 이런 식으로 일본산 상품ㆍ서비스의 국내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관세를 인상하는 방안은 국책연구기관이 제시한 상응조치이기도 하다. 여권 일각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는 소재ㆍ부품 관련 품목에 대한 일본 수출을 규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지소미아 연장 거부도 정부가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 카드다. 일본 주장대로라면 안보상 신뢰가 훼손된 국가끼리 어떻게 군사 정보를 교류할 수 있냐는 게 한국 정부 논리다. 지소미아는 한쪽이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하면 폐기되는 구조인데, 통보 시한이 이달 24일이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내용이 포함된 수출무역관리령 시행 예상 시기(28일)와 비슷하다. 지소미아가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의 틀이어서 미국 눈치를 많이 보는 일본을 막판까지 움직일 지렛대로 쓸모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육책으로 맞대응 카드를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갈등 해결 방식은 대화다. 현재 일본이 우리 요청을 거부하고 있지만 정부는 6월 19일 제안한 ‘한일 기업 공동 기금 조성안’(1+1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를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미국이 중재 필요성을 인식한 상태인 데다 국내외 여론 악화가 신경 쓰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결국 출구를 찾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대법원의 징용 피해 배상 판결 이행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삼권 분립 원칙을 견지한다는 게 현재 방침이지만 일본이 전향적으로 나올 경우 청와대가 우회적인 피해자 설득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양국 간 협의가 아직 결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요구하는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이나 국제사법재판소(ICJ)행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 변함없는 정부 입장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지소미아 파기를 보류하고 미국 중재로 일본이 한국 경제를 옥죄거나 기술 패권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데에 한미일이 합의하는 방안을 추진해봄 직하다”며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아니지만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가까운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일본과 대만ㆍ싱가포르 간 포괄허가제가 참고할 만한 모델”이라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