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특유의 ‘자국 우선주의’와 ‘비개입주의’ 성향을 두 가지 한국 이슈에 부족함 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주요 동맹국 중 한 쪽 편을 들 경우 미국이 마주할 부담이 두려워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제대로 된 언급을 내지 않고 있다. 또한 잇따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로 도발을 하면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자칫 자신의 정치적 치적인 북미대화 국면이 훼손될까 봐 “아무 문제 없다”는 말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일 간 갈등 국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발언이 유일하다.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간 중재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만약 그들(아베 신조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모두 내가 (관여)하길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는 양쪽 지도자 모두를 좋아한다”며 “그들이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당장의 개입 보다는 당사국 간 해결 노력을 주문한 것이다. 이후 일본이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키로 결정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과거사까지 끼어 있는 민감한 문제에 섣불리 한 쪽 편을 드는 것은 안보 협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중립 노선을 택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사실상 ‘묵언’ 대응은 일본측에 “미국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준 셈이 돼 아쉬움을 남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와 비개입주의는 최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도발 국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일(한국시간) 새벽 이뤄진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도발에 대해 “단거리는 아무 문제가 없다. 상황이 매우 잘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에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미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아니란 점만 강조했다. 북한의 도발 의미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난 자신의 치적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핵폭탄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닌 이상 원하는 어떤 무기라도 실험할 수 있는 완벽한 면허를 줬다”고 비꼬았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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