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세계는 50년 전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얘기로 떠들썩했다. 지휘본부인 미국 항공우주국의 휴스턴 발사기지는 당시와 똑같이 내부를 재현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비행계획표는 물론, 커피잔과 재떨이가 여기저기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장면은 우주개발 연구자들의 긴장된 목격 순간을 잘 전해 주고 있었다. 닉슨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성공과 실패 두 가지 시나리오를 담은 대국민 담화문 가운데 어느 것을 읽게 될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 소식이 들린 순간 미국인의 환호는 당연한 것이었고, 다른 국민들은 찬사와 함께 상당히 부러운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부러움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아폴로 11호와 외형이 거의 같되 3인승에서 4인승으로 개조한 유인 탐사선 오리온 개발에 한창이다. 목표는 화성이다. 달을 전초기지로 삼아 화성까지 인간을 보낸단다. 지금의 기세를 보면 실현될 것 같다. 문득 한국의 상황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정부의 달 탐사 계획이 간간이 들려 왔었다. 하지만 크게 기대되지는 않았다. 우주개발에는 온갖 종류의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적으로 적용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고, 한 번 실패하면 손해가 막대하다. 의지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객관적 한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50년 전 한국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앞으로 50년 후가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마침 우주개발정책 전문가인 후배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국내 신문을 보면 지금 우리의 기술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1969년 7월 20일자 국내 신문들은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다음 날 새벽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집중호우로 난리가 났다는 기사도 눈에 들어왔다. 5,000여가구가 침수되고, 3만여명의 주민이 한밤에 긴급 대피했다. 그 해에는 유난히 수해가 심했다. 이전 2년간은 혹한 가뭄에 시달리다 9월에는 남부 지역 전체가 물난리였다.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400여명에 달했다. 당시 우리 국민에게 아폴로 11호의 쾌거는 먼나라를 넘어 꿈나라 얘기 정도로 들렸을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항공우주연구소가 설립됐다. 우리 기술로 만든 인공위성을 많이 쏘아 올렸다. 외나로도에 발사기지를 갖춘 우주센터를 만들었다. 가장 어려운 분야의 하나인 발사체도 상당 수준으로 국산화를 이뤄냈다. 1996년 정부가 수립한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에 ‘우리가 만든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 우리 땅에서 발사한다’고 명시된 슬로건이 현실화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달 탐사도 오래 전부터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그 진행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계획이 바뀐다는 지적이다. 달 주위 궤도에 우리 우주선을 보내려 했던 시기가 처음에는 2020년, 다음에는 2017-2018년, 현재는 다시 2020년으로 수정됐다. 달 표면에 착륙선을 보내는 시기는 2020년에서 2030년으로 늦춰졌다. 착륙선은 그렇다 쳐도 당장 내년 말 예정된 궤도선 발사마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물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 빨리 우리 우주선이 달을 향해 발사되는 장면을 보고 싶다. 다만 지나치게 국민을 의식해 서두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출발은 늦었지만 50년 전에 비할 수 없을 수준의 기술을 축적해 온 저력을 믿는다. 세계 강국들이 협력해 달 궤도에 제2의 우주정거장을, 달 표면에 인간 거주지를 건설하는 일에 바쁘다. 한국도 그 대열에 합류해 고유의 몫을 꿰차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도 달은 꿈나라 얘기로 남을 것이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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