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러시아 조약 위반 이유로 예고대로 2일 INF 탈퇴 기정사실화
지상발사 단거리 중거리 탄도•순항미사일 생산 배치 제약 없어져
미국 인도태평양지역에 중국 견제 위해 배치할 가능성…중국 반발
미국이 예고한 대로 2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할 것으로 예상돼 핵 군비 경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 견제 성격도 담긴 것으로 해석돼 동북아 안보 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 국방부 칼러 글리슨 대변인은 "러시아는 의무사항의 검증 가능한 준수로 되돌아가려는 어떤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조약이 2일 종료되면 미국은 더 이상 INF상 금지 조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INF를 준수하지 않으면 6개월 뒤에 조약을 탈퇴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INF는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됐다. 500㎞~1,000㎞의 단거리와 1,000㎞~5,500㎞ 중거리 사거리를 가진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 시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INF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를 제한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과 함께 미소의 핵 군비 경쟁을 종식시키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유럽 미사일방어 체계를 구축하면서 양국 사이에는 서로 'INF 위반'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미국은 2017년 초 러시아가 9M729 순항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이 INF 조약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상 INF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그러나 러시아는 9M729의 사거리가 500㎞에 미치지 못한다고 반박하면서 미국이 지상발사 핵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할 경우 맞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다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은 INF가 폐기되더라도 INF를 위반하는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INF 파기를 둘러싼 긴장은 미국과 러시아 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중국간에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INF 조약에서 벗어나 있는 중국은 미사일을 마음껏 생산 배치한다고 불만을 드러내왔고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해 “이란과 중국, 북한 등도 중거리 탄도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만 이 조약에 묶여 있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INF 폐기 배경에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AFP는 미국 국방부가 중국에 맞서 핵무기를 현대화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흥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을 새롭게 개발해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조지프 던퍼드 합참 의장의 뒤를 이어 10월에 취임할 예정인 마크 밀리 차기 합참의장은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INF 폐기 후 인도 태평양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향후 100년간 최대 안보 위협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INF 파기에 반발해온 것도 이 같은 기류 때문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인 탈퇴로 조약이 폐기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은 또 다른 미소간 군축 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파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TART를 갱신한 이 협정은 2021년에 만료될 예정인데, 볼턴 보좌관은 이 협정 갱신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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