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이후 세번째 ‘무례 외교’… 강창일 “구걸외교 하러 왔나” 성토

국회 방일 의원단이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으로부터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했다. 지난달 12일 일본 경제산업성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 회의, 19일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의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 초치에 이어 일본이 무역보복 조치 이후 세 번째로 연출한 ‘무례 외교’의 장면이었다. 방일단 의원들 사이에선 “우리가 구걸외교를 하러 온 게 아니다”는 목소리마저 터져 나왔다.
서청원 무소속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 방일단은 당초 자민당의 2인자인 니카이 간사장을 방일 첫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임시국회 개원 준비”를 이유로 면담 14분 전 취소 통보를 받은 데 이어, 1일 오전으로 연기된 면담 마저 “북 미사일 발사에 따른 당내 긴급 안전보장회의 때문”이라는 이유와 함께 거부당하고 말았다. 자민당 측은 면담 여부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다가 방일단 출국 전날인 지난달 30일 밤에서야 일정을 알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니카이 간사장 주변에선 “현 시점에서 면담을 해도 한일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면담에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결국 이틀 동안 두 차례나 자민당으로부터 니카이 간사장 면담 취소 통보를 받으면서 또 다른 외교 결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방일단에 속한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을 통해 면담 취소를 통보한 일한의원연맹 소속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간사장에게 “한번 연기한 것을 취소하면 어떻게 하느냐. 엄청난 외교적 결례”라고 강력 항의했다. 그는 면담 재추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가 거지냐”라며 “구걸외교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변이 그만큼 입장이 강경하고, 자민당도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개각과 자민당 지도부 개편을 앞두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베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침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연기 또는 철회를 요구하러 온 한국 의원단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임을 보여준 것이다.
국내적으로 강경한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상식에서 벗어난 외교 결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경제산업성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실무회의에선 회의장 한 구석에 의자와 테이블이 쌓여 있는 방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 앞서 호스트 격인 경제산업성 실무자들은 한국 측 실무자가 입장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악수를 건네지도 않았다. 19일엔 고노 장관이 남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남 대사의 발언을 중간에 끊고 “매우 무례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손님을 극진히 접대하는 일본의 ‘오모테나시’는 다시 한번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방일단은 이날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 국민민주당 대표와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郎) 입헌민주당 간사장을 예방,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철회를 요청했다. 또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강행 시 한미일 안보협력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한일ㆍ일한 의원연맹 차원에서 조율했던 공동성명도 불발됐다. 방일단은 △양국 의원단이 한일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노력 △양국 정부에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촉구 등을 담은 방일 결과를 발표하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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