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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조국과 한국당의 기묘한 동거

입력
2019.08.01 20: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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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장관’ 기정 사실화에 청와대 침묵

청문회는 통과의례…17번째 강행할 듯

50여명 피소 한국당, 인사투쟁 손사래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퇴임인사를 통해 2년여의 재임기간을 회고하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차기 법무장관으로 유력시되는 그는 촛불 명예혁명의 요청에 부응해 법과 원칙에 따라 직진했다고 자부하면서 다시 돌아올 것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퇴임인사를 통해 2년여의 재임기간을 회고하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차기 법무장관으로 유력시되는 그는 촛불 명예혁명의 요청에 부응해 법과 원칙에 따라 직진했다고 자부하면서 다시 돌아올 것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 일찍이 보지 못한 기묘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새로 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주목받더니 개선장군처럼 더 큰 자리로 돌아올 것을 예고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촛불 명예혁명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법과 원칙에 따라 직진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자찬도 늘어놨다. 비재(非才)와 불민(不敏) 탓에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부분이 있었다고 몸을 낮췄으나 곧바로 자신을 향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비난과 야유로 폄하하고 이를 ‘존중의 의사’로 치장했다. “반추의 계기가 됐다”고 했으나 반추는커녕 비아냥으로 들렸다.

법무부 장관 중용이 어느새 기정사실화 된 조국 전 민정수석 이야기다. 내년 총선을 관리하는 자리에, 대통령의 최측근을 앉히는 것은 정치도의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상식은 없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의 전례를 소환한 ‘내로남불’ 지적에 한때 민망해하던 여권내 반대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것은 7월 초 그의 장관 영전설이 나돌 때부터 비판을 쏟아냈던 대부분의 언론마저 역부족이란 듯 실세의 위력을 당연시하며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역학관계 분석 등으로 초점을 옮긴 점이다. 심지어 김조원 후임 민정수석까지 끌어와 ‘조-윤-김’ 라인업이 사법개혁의 삼륜마차인 양 포장하는 언론도 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조국에게 장관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특권적 편견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임명권자의 의지나 후보자의 자질과 별개로 김영삼 정부 이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 발목이 잡혀 낙마하거나 X망신 당하는 것을 수없이 보고도 말이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 2년여 동안 윤 검찰총장까지 16명의 장관급 인사들이 청문보고서 없이 ‘무단(武斷) 임명’된 것에 여론이나 언론도 어느새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강행된 편법적 인사행태에 분개하며 청문회 무용론까지 제기했던 문 대통령이 이젠 “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분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있다”며 흠집을 유능함으로 감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대통령 눈에 대일 여론전 전사로 나선 조 전 수석의 지적 오만과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 보일 리 없다. “민정수석 재임 기간이 주군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불충”이라는 객쩍은 말마저 예쁘게 들릴 것이다.

가장 우스운 것은 ‘어법조(어차피 법무장관은 조국)’라는 듯 지레 손 든 한국당 태도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얼마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인사검증 실패, 공직기강 해이, 사법의 편향성 등 문 정부 3대 실패의 중심이자 배후인 조 전 수석이 영전해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것은 우리 법치주의의 악몽”이라며 “곡학아세 지적을 받은 그가 이끌 법무부는 무차별 공포정치의 발주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가 막힐 일이지만 이 폭주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푸념만 늘어놓고 쉽게 물러섰다. 동문수학한 벗에 대한 의리인지, 책임을 피할 알리바이용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조 전 수석을 이른바 신독재의 기획자로 지목해 퇴진을 요구해온 한국당이 청와대의 17번째 임명 강행을 사실상 용인한 이상, 조국 법무 카드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의 무모한 패스트트랙 투쟁 탓에 50여명의 정치 생명이 위협받는 한국당의 운신 폭도 좁다. 괜한 공세를 펴다 되치기를 당해 궁지에 몰리기보다, 깨끗이 조국 카드를 인정하고 ‘거래’를 하자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그럴 법도 하다. 잠시 반짝했던 황교안 체제는 리더십ㆍ철학ㆍ세력의 3박자가 빠진 거품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친박의 발호와 당 지지율 급락으로 확인됐고, 잠시 우파의 기대를 모았던 나 원내대표 체제의 정치력도 민낯을 드러냈다. 친일 프레임에 허둥대는 한국당에 총선 필패론이 역병처럼 번지며 우리공화당과의 연대설까지 나도는 것도 전혀 낯설지 않다. 조 전 수석이 SNS에서 경박한 언행을 그치지 않는 것은 이런 한국당과의 동거가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청문회, 정말 열릴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l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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