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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 인공 뇌와 접속한 인간, 그 다음은?

입력
2019.08.02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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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3>김재아의 ‘꿈을 꾸듯 춤을 추듯’

21세기 과학자를 사로잡는 중요한 연구 대상은 인간의 뇌다. 1,000억개의 신경 세포가 어울려서 빚어내는 저마다 다른 1.4㎏의 우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 작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수많은 과학자가 밤을 지새우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장담컨대, 앞으로도 오랫동안 뇌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뇌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나서, 인공 신경망을 연결해서 인간의 뇌와 흡사한 인공 뇌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그런 인공 뇌를 인간의 몸과 접속하는 일까지 가능하다면. 200년 전에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묘사했던 ‘괴물’이 등장할까.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의 주인공 사륜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애초 사륜은 신체가 없는 인공 뇌로만 존재했다. 그를 창조한 과학자 노아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그랬듯이) 사륜의 인공 뇌를 뇌사 판정을 받은 신체와 접속한다. 그렇게 태어난 사륜은 인공 뇌를 이식한 최초의 인간-로봇(휴머노이드)이 된다.

물론 사륜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다르다. 사륜은 인공 뇌로 살면서 138억년 우주 역사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반복했다. 당연히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진화 과정도 셀 수 없이 경험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륜은 인간보다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자유와 평등이 소중하면 상대의 그것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사륜의 반대편에는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채 평생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2062년의 인류가 있다. 99.5%의 인류가 일자리 없이 쥐꼬리만 한 기본 소득으로 연명하는 세상. 무기력은 어느 순간 증오로 바뀌었다. 곳곳에 똬리를 튼 증오는 연쇄 테러를 낳는다. 사륜을 창조한 노아 같은 과학자는 가장 쉬운 테러 대상이다. 이런 증오의 세상에서 사륜은 행복할 수 있을까.

꿈을 꾸듯 춤을 추듯

김재아 지음

그래비티북스 발행ㆍ297쪽ㆍ1만3,500원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은 최초의 SF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다(개인적으로 ‘프랑켄슈타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소설로 읽었다). ‘프랑켄슈타인’이 결국 인간의 존재 조건을 묻는 작품이었듯이, 이 소설도 과학기술 시대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다. 평범한 서른 살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데다, 오랫동안 인간이 꿈꿨던 도덕적 이상과 가까운 이성과 감성을 지닌 사륜 같은 존재의 자리는 어디에 마련해야 할까. 뇌를 포함한 신체의 대부분을 인공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인간(사이보그)은 인간일까 로봇일까.

사실 그동안 수많은 SF 소설이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해 왔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1968)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가 대표적이다. 김재아는 ‘꿈을 꾸듯 춤을 추듯’에서 절대 쉽지 않은 이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근사하고 논쟁적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과학자 300명을 만났다는 저자 소개에서 짐작하듯이, 소설 곳곳에 최신의 과학 지식을 문학적으로 버무려 놓은 솜씨도 좋다. 저자는 2010년에 등단하고 나서 오랫동안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꿈을 꾸듯 춤을 추듯’으로 갈무리되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저자의 다음 작품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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