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젊은 정치] 릴레이 인터뷰 <19> 김푸른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전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스타트업! 젊은 정치’는 한국일보 창간 65년을 맞아 청년과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의도 풍토를 집중조명하고,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 중심의 국회를 바로 보기 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전체 시리즈는 한국일보 홈페이지(www.hankookilbo.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 성별, 성지향, 성별정체성, 장애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관계 등에 관계 없이 동등하다." 이런 약속문을 당원 모두가 공유하고 지키는 정당이 있다. 끝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어를 사용하고, 상호 동의 없이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외모와 관련된 발언을 주의한다." "연애와 결혼은 필수가 아님을 유의한다." 녹색당이 2016년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해 선포한 '당 평등문화 약속문'의 일부다. 연령주의나 연공서열이 공고하고, 제 아무리 의원이라도 초선이라면 ‘어린 애 취급’을 피하기 어려운 기성 정치권의 풍경을 생각하면, 이런 정당의 문화는 ‘먼저 온 미래’ 같은 낯선 풍경이다.
이런 녹색당에서 청년 조직의 리더로 뛰는 정당인이 바라보는 한국 정당과 정치 문화의 성적표는 어떤 모습일까. 전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일한 김푸른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을 만나 그가 바라보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2014년 정치학자, 정치인 중심의 포럼에서 시작된 비례민주주의연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초정파적 시민운동단체다.
◇ 다음은 일문일답.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내셨는데, 정치 활동 시작의 첫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대 총선이 제 첫 투표였는데, 그 때 사실 결과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제 표가 다 사표가 됐거든요. 녹색당 당원으로서 기본소득, 성평등, 탈핵, 미세먼지 등 기존 정치권에서 소외돼 왔던 의제들을 논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 당시 득표율이 0.76% 정도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았어요. 정말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정책을 이야기하는 정당이 왜 이렇게 국회에 진출하기 어렵지? 뭔가 전략적 한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제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을 처음 가졌어요.
다른 나라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선거개혁을 통해 정치를 바꾸는 근본적인 출발점을 마련한 것을 보면서, 비례민주주의 연대에서 활동하게 됐고요.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각 정당에서는 청년 조직이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절감해, 녹색당의 청년 조직에서 일하게 됐고요. 기성 정당에서는 청년이 목소리 한 번 내기도 너무 어렵다는 현실을 많이 목격했거든요. 항상 청년이 정치를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외침은 많지만, 그게 공허하고 당위적은 구호처럼 여겨졌거든요. 정치라는 게 수많은 갈등을 조율하고 협상해야 하는 일인데, 이런 걸 잘 할 수 있는 좋은 정치인을 길러내기 위해 청년들이 정당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사실 비례민주주의 연대나 녹색당이라는 조직은 저를 한번도 ‘청년’이나 ‘대학생’이라고 호명하지 않거든요. 단지 저 자신으로 바라봐주고 인정하는 문화가 공고해요. 저는 단지 청년 의제에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청년이라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냥 김푸른이죠. 계속 청년의 정체성으로 호명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이 있어요. 어느 정당이라고 꼭 지목할 순 없지만 청년 조직이 있는데도 예산과 권한이 전무한 곳도 있고, 청년들이 계속 기성 정치인의 눈치만 보기도 하고, 일단 마이크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말로는 ‘청년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청년은 오로지 ‘청년’으로만 규정하는 거죠.”
-기성 정당이 ‘청년을 호명한다’, ‘이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와 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청년이랑 청년 문제를 지금까지 명명해왔던 것이 기존 정치권이랑 언론이었다고 생각해요. 주거, 일자리, 교육, 결혼하기 어려운 현실 등 한국사회의 전 사회적 문제가 그냥 ‘청년문제’라고 규정되고 있고요. 그 사이에서 청년은 어떤 ‘N포세대’ 같은 특정한 이미지를 입고 규정되고요. 청년도 다양한 집단, 연령, 성별, 계급을 가진 존재인데 하나로 뭉뚱그리는 거죠. 예를 들어, 그냥 어떤 정당이 진보적인 이미지, 젊은 이미지를 갖고 싶을 때, 두리뭉실하게 청년을 호명해 배려하는 듯한 인상을 줘 활용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청년비례’ 라든가요?
“네, 물론 다양성을 제도화한다는 의미에서 ‘청년’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관대하게 청년을 45세 미만이라고 정의하더라도 한국은 여기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이 극소수잖아요. 엄청난 불균형성이고 국회에서 50대 이상 남성이 과대대표되는 문제를 지적할 때, 청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순 있을 것 같아요.”
-불균형성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표면적으로는 공천제도의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정당마다 다르긴 한데 원내 정당들 경우에는 누군가의 심사를 받고 ‘간택’이 되는 제도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유명한 정치인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죠. 나이가 많고, 네트워크가 많은 사람에게 유리한 선거 제도와 공천 제도가 근본적으로 문제인 것 같아요. 거대 양당이 아니면 사실 당선 가능성이 미비한데 청년들이 그 안에서 공천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거니까.
또 다르게 들어가보면, 청년들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배경이 있는 것 같아요. 정치가 50대 이상의 남성 엘리트의 전유물로 상상이 되면서 청년정치인이 지금 너무 낯선 존재가 돼 버렸고. 청년들이 내가 스스로 정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많이 가진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체화된 무력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판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기존 정치권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진입하긴 어렵지 않을까. 선거제도도 바뀌어야 하고, 정당의 문화도 바뀌어야 하죠. 연령주의에 기반한 문화부터요.”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기성 정당의 문화를 꼽는다면요.
“정말 청년 정치가 중요하다고, 기성 정치인들이 생각한다면, 그냥 자신들의 기득권을 넘기면 돼요. ‘청년 부대변인’처럼 실질적 권한이 없는 자리를 시혜적으로 주는 방식이 아니고요. 녹색당은 제가 의견이 실제 당 운영에 수용된 경험을 할 수 있는 조직이에요. 청년의 의견을 ‘우쭈쭈’ ‘오구오구’ 하는 방식으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인 거죠. 다른 정당 분들이 그걸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해요. 놀랍게 보고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저는 신지예 후보 본부에서 일을 했는데, 그 때 다른 당 청년들이 저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녹색당은 너한테도 마이크를 줘?’하고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이라고 생각한 거죠. 한국사회에서는 나이가 어린 여성이 정당의 몫의 마이크를 잡고 나선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에요. 제 나이나 사회적 위치, 성별에 관계 없이 정당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아야 한다는 목표도 있고요.”
-유세에서의 역할 외에 평소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게 있다면요.
“일단 당헌에 여성 과반 이상이 각종 위원회나 조직에서 대표자를 맡아야 한다고 명시가 돼 있어요. 공동운영위원장 중 한 명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하고요. 평등문화 약속문을 공유해요.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반드시 경어를 사용하고요. 청년 비중이 높은 정당이니까 공통의 약속이 있는 거예요. 서로 경어를 사용하고 같은 의사결정 당사자로서 존중해요. 어떤 사람이 청년이든 여성이든 당에서 권력을 가진, 기반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성평등한 선거를 위한 매뉴얼도 있어요. 보통 후보들이 길거리 괴롭힘에 엄청나게 시달리는데 여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공통의 감수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했고요.”
-길거리 괴롭힘이 그 정도로 심한가요?
“상대적으로 저희는 젊은 여성 후보가 많아요. 후보는 분명 한 정당의 대표자로 선거에 나온 사람인데, 일단 젊고 여성이면 후보로 보지 않는 분이 많아요. ‘열심히 하네’라며 등을 만지기도 하고, ‘뽀뽀해주면 찍어줄게’라는 말도 하고요. ‘결혼은 했냐’, ‘애는 있냐’ 등등이 이어져요. 여타 후보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한국 사회가 여성을 상상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죠. 벽보가 찢어지는 일도 있었잖아요. ‘나이도 어린 애송이가’, ‘운전도 못하는 여자가’ 하는 말들을 견디면서 운동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필요한 거죠. 단지 표를 의식해서 헤헤 웃고 말 것인가. 그게 아니라 후보를 보호하기 위한 당내의 공통된 감수성을 만드는 시도가 필요한 거죠.”
-그런 당 문화라면 여의도 풍경도 달리 보일 것 같네요.
“저는 여러 색깔과 논의를 가진 사람들이 골고루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현 국회의 직업분포, 연령분포를 보면 평균연령이 55.5세, 남성, 지역기반의 양당 출신에, 법조인이나 의사 교수 기업인 출신이잖아요. 이런 구성으로 한국 사회의 약한 고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대표는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죠.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 특정 성별, 연령이 과대 대표되고 마치 다른 사람들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제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분명히 있죠. 의회는 사회의 축소판인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50대 남성 엘리트 과다 대표의 부작용이 있다면요.
“청년 문제와 관련해선 일자리 증가지표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경제적 부문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자꾸 청년을 만나고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는데, 어떤 청년을 만나려고 하는지, 어떤 청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지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일자리 문제도 청년 세대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청년이 사회와 신뢰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성 평등 정책이나, 기본소득과 같은 안전망 문제,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탈핵 문제 등 중요한 화두가 많아요. 기본적으로 이 사회를 신뢰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의 측면이요. 이런 사항에 대한 숙고는 없이 ‘청년들은 이거 해주면 되지? 일자리 만들어주면 되지?’하는 정책 수혜자나 객체로 치부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아마 다양한 연령대, 젊은 세대들이 국회에 들어가면 장기적 변화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국제의회연맹 보고서에서도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요.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정치인 중에 스웨덴 녹색당 출신, 구스타프 프리돌린 장관이 있어요. 초등학생 때 녹색당에 가입을 했고, 정치적 훈련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됐고 32세에 교육부 장관이 된 인사에요. 한국은 정당법 자체가 청소년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아요.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피선거권과 선거권을 모두 하향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일들이 추진돼야 한다고 봐요. 지금처럼 계속해서 청년들이 정치혐오를 느낄 수 밖에 없고, 정치가 내 삶을 바뀐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정치권이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기본적으로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정치라는 것은 특출난 사람, 돈 많고 학벌 좋고, 나이 많고, 이미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잖아요. 정치가 많은 갈등을 마주하고, 타협하고, 협상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실은 그런 적이 없죠.
-훈련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학교에서부터 정치라는 영역, 한국사회의 정당의 역할 등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봐요. 저도 정치라는 영역을 제가 관여할 영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한국사회에 어떤 정당이 있는지 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선 안되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거냐’라고 하는데 사실 정치판이 되면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각 정당의 강령들을 공부하고 정당 내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각자 지지하는 정당 있고, 당원가입도 하고, 수업시간에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 토론해 보는 시간 있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여타 제도 중엔 바뀔 부분이 무엇일까요.
“많죠. 선거운동과 관련해서도 많고요. 우선 비례대표만 해도 유세 때 마이크를 못쓰게 돼 있어요. 생목으로 이야기해야 해요. 뭔가 지역구 중심의 선거인 거에요. 비례대표도 분명이 정당의 후보이고 대표인데,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선거운동 문화가 있다고 봐요. 원내 정당들이 의석수에 비례해서 기호를 받아서 운동을 시작할 동안, 원외 정당들은 기호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공보물도 찍지 못하는 현실도 있죠.
그래도 국회에서 현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나와서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지만, 활동가 입장에서 볼 때는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한 것 같아요. 다만 더 좋은 안을 계속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실시간 비례대표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공론화 되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싶어요.
선거제가 개혁되고, 기존 정치권이 외면해 왔던 의제를 말하는 정당이 국회에 더 많아지면, 즉 다른 정치를 보게 된다면 사람들이 ‘그 동안은 국회가 누구의 옆에 서 왔는지’ 돌아보겠죠. 주로 이제까지 해온 정치라는 게 결국 ‘자기 기득권 챙기기’였다는 것을 확인하겠죠. 그러면 정당들도 변화할 수 밖에 없을 거고, 정책 중심의 정당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나야 그간 국회가 외면해왔던 의제를 돌아보지 않을까요.”
-정치권에 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내가 어떤 사람들 곁에 서 있겠다는 결의로서 정치를 하는지, 아니면 권력을 잡아서 한몫 챙기려는 술수로 하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정당 정치인들을 떠올리면 각자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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