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길동전’을 쓴 조선시대 문신 허균은 그야말로 미식가였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다름 아닌 음식에 크게 푸념했다. “쌀겨조차 부족했고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뿐이었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쳤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는 별미에 관한 글까지 쓰며 허기를 채웠다. “여러 음식을 종류대로 나열해 기록하고 때때로 보면서 고기 한 점을 눈앞에 둔 셈” 쳤다. 그 책이 바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는 뜻이니 허균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은 떡, 과일, 고기, 수산물, 채소를 망라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의 문인 김려는 유배 중에 낚시에 빠져 지내다 어패류를 모아놓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썼다. 생선 53종, 갑각류 8종, 조개류 11종이 나온다. 일부 어종의 설명과 함께 이를 시로도 썼다. 그 시의 모음이 ‘우산잡곡(牛山雜曲)’이다. 바다에서 만난 신기한 생선과 어촌의 삶, 생선 요리의 맛을 담은 최초의 바닷물고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미식가들’은 이렇듯 조선시대 미식가들을 줄기로 한 음식문화사다.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썼다. 조선시대의 문헌을 바탕으로 직접 먹어보거나 만들어본 음식을 글로 남긴 15명을 추려 소개했다. 선비, 왕, 사대부 남성과 여성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여말선초의 문신 이색은 증류식 소주로 추정되는 술의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술 속의 영특한 기운만 있으면, 어디에 기대지 않아도 되네…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표범 가죽 보료 위에 앉아 금으로 만든 병풍에 기댄 기분이네.”

그런가 하면 영조는 “송이, 생복, 아치(어린 꿩), 고초장(고추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는다”고 했다. ‘승정원 일기’에서 고추장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하면 영조 대에서만 22건이 검색된다니 영조의 ‘고추장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당파심 때문에 자신이 달가워하지 않았던 조언신의 아들 조종부가 올린 고추장의 맛에 반했다는 일화도 있다. 영조는 “대단히 맛이 좋았다”고 하더니 그가 올린 상소에 “조종부 집안의 고추장 맛이 좋은 건 알고 있었다만, 그가 고추장을 지나치게 먹어서 고추의 화신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며 “(상소가) 심하게 맵다”고 평하기도 했다.
냉면의 역사도 등장한다.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냉면(물냉면)과 골동면(비빔국수)이 등장하는데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고 적혀 있다. 관서는 평안도를 가리키니 평양냉면이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
저자는 “조선의 미식가들이 남긴 음식 글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밝혀보려고 노력했다”며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면 조선시대 실재했던 음식의 역사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미식가들이 맛을 표현한 맛깔 나는 문장과 함께 천연색의 음식 사진이 읽는 맛을 돋운다.

조선의 미식가들
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출판그룹 발행ㆍ352쪽ㆍ2만원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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