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계속 과거로, 오른쪽으로만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요즘 사석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한국당은 지난 2월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반짝 상승세를 타더니 당 지지도가 다시 10%대로 주저 앉았다. 막말 논란에 계파 싸움, 리더십 부재가 겹친 결과다. 최근 들어선 옛 친박계가 당 요직을 장악, ‘도로 친박당(친박근혜당)’이 될 조짐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조용하다. 위기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홍준표 전 대표와 김용태ㆍ김학용ㆍ장제원 의원 등 이른바 비박계 의원들이 ‘개인 플레이’ 차원에서 황교안 체제를 비판하는 정도다.
왜일까. 우선 체제를 좀처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대대로 이어진 보수 정당의 체질이다. 더 결정적 요인은 황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가 내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는 점이다. 황 대표를 대체할 강력할 리더십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황 대표와 친박계 주류의 눈 밖에 나지 않겠다는 ‘이기적 침묵’이 당을 지배하는 셈이다. 김용태 의원은 “‘내 지역구는 전통적으로 한국당이 강세니까 나는 공천만 받으면 된다’ ‘당의 미래보다 내가 공천 받는 게 중요하다’ 같은 생각으로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내 기득권 세력인 대구ㆍ경북(TK) 의원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비주류의 구심점이 없다는 점도 침묵을 더 깊게 하는 요인이다. ‘9룡’이라고 불리는 대선주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거나, 잠룡 시절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이 맞붙는 등 과거 한국당엔 건강한 경쟁 구도가 작동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미우나 고우나’ 대표만 쳐다보고 있는 게 한국당의 현주소다. 비박계 한 의원은 “비박계 의원 상당수가 재판이 걸려있는 탓에 매력적인 스피커 역할을 할 만한 자원이 없다”고 토로했다.
홍준표 전 대표 시절 한국당이 내홍으로 공멸했던 경험도 의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한국당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홍 전 대표와 반대파의 감정적 싸움으로 자중지란에 빠졌고, 결국 선거에서 참패했다. 영남권 한 의원은 “황 대표는 어쨌거나 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선주자”라며 “황 대표가 무너지면 당 전체가 위기에 빠지니 지금은 하나가 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황 대표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황 대표를 흔들려는 원심력이 커질 것이다.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인 오는 9월 추석쯤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설이나 추석 연휴는 전통적으로 ‘민심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장제원 의원은 “황 대표가 충언에 귀 기울여 선명한 개혁 노선을 설정하고 이를 인물과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재선 의원은 “황 대표가 명확한 비전을 내놓지 않으면 원희룡 제주지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같은 원외 인사를 중심으로 혁신을 바라는 동력이 모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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