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만난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 홍윤기 인턴기자

“민ㆍ형사 재판이 성폭력 가해자 ‘개인’의 잘못을 따지는 과정이라면, 산업재해는 성폭력 문제를 방치한 ‘조직’의 책임을 묻는 겁니다. 아직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30일 만난 남정숙(57) 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교수는 의외의 얘길 꺼냈다. 남 전 교수는 성균관대 재직 당시 보직 교수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폭로, 민ㆍ형사 재판에서 모두 이겼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으로는 흔치 않은 케이스로 꼽힌다. 최근엔 산재까지 인정받았다. 이 정도면 완벽한 승리라 할만하다. 하지만 남 전 교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했다. 육체적 손상에만 초점을 맞춘 산재 인정 과정이, 성폭력과는 잘 맞지 않아서다.

남 전 교수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건 2014년 4월이었다. 하지만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건 4년이 지난 2018년 4월이었다. 산재의 요양 급여는 2018년 4월을 기준으로 계산됐다. 남 전 교수는 산재를 인정받았으나 정신과 진단을 받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100만원에도 채 못 미치는 보상금만을 받을 예정이다.

성폭력 피해 이후 4년간 민ㆍ형사소송을 진행하며 겪어야 했던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 그리고 그에 따라 발생한 위염이나 방광염 등 스트레스성 질병 등에 대한 보상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남 전 교수는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그 특성상 피해 사실을 빨리 알아채기 어려워 증세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병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준을 ‘정신질환 진단시점’이 아니라 ‘성폭력 발생 시점’으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청 준비 중인 실업 급여도 문제다. 남 전 교수는 성폭력 문제를 학교 내 ‘성평등상담실’에 투서했다는 이유로 2015년 12월 ‘재임용 승인 거부’ 형식으로 성균관대에서 쫓겨났다. 이로 인한 수입 손실을 보전받아야 할 차례인데, 벌써 근로복지공단 쪽에선 ‘아마 받기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한다.

이유는 쫓겨난 남 전 교수가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서다. 특히 지난 해부터는 자신과 같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전국미투생존자연대’를 결성, 맹렬히 활동했다. 남 전 교수 사건을 맡아 진행하는 고금주 노무사는 “기존 산재 개념 자체가 ‘육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불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한마디로 산재 당했으면 병원에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 전 교수가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하나의 ‘선례’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산재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넘어, 요양ㆍ실업 급여 문제까지 파고들어 행정소송까지 진행해볼 생각이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개인’보다 ‘조직’의 문제가 더 크거든요. 조직이 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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