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동남아 최대 쓰레기산을 가다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한국일보>
등성이를 오를수록 악취가 몸에 질퍽하게 달라붙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냄새에 취해 있던 파리 떼가 날아올라 징그럽게 앞을 가렸다. 정상까지 40m, 거기에도 몇몇 사람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를 디디고 몸을 바짝 낮춰 기어오르려 하자 “티닥 티닥(안돼, 안돼)” 사람들이 말렸다. 쓰레기로 쌓아 올린 산 중턱에서 발을 멈췄다.
시야가 열렸다. 트럭이 산 아래 바닥에 쓰레기를 부렸다. 굴착기 예닐곱 대가 비탈에 줄지어 선 채 긴 팔로 쓰레기를 배턴 터치하듯 위로, 위로 무심하게 던지고 있었다. 대나무 질통을 멘 넝마주이 수십 명은 차가운 쇳덩이 옆에 바짝 붙어있었다. 기계가 새로 퍼붓는 쓰레기 더미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쓸만한 쓰레기를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굴착기 손바닥에서 흩날린 쓰레기들이 넝마주이와 기자의 머리 위로 눈처럼 떨어졌다. 기계와 인간이 뒤엉킨 풍경이 기괴하다.
오감이 ‘더럽다’고 아우성치는 사이, 그 고단한 작업 중에도 넝마주이들은 기자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리나(44)씨는 쓰레기를 줍다 말고 친절하게 발 디딜 곳도 알려줬다. 주어진 환경이 사람의 인성까지 더럽히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 마음이 하도 고와서 셔터를 눌렀다. “포토, 시투(사진, 저기)” 정도만 알아들었는데, “저 사람들도 찍어줘요”라고 답하는 것 같았다.
중턱 아래에는 알량한 천으로 하늘을 가린 간이 식당 두어 개가 있다. 넝마주이들은 쓰레기로 버려진 소파와 스티로폼을 의자 삼아 끼니를 때웠다. 얼마를 버냐고 묻자 식당 주인 사나(21)씨가 “다들 가난해서 많이 못 번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옆에 있던 동네 꼬마 레판(6)을 가리키며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니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좋은 나라”라고 했다. 악취를 피해 하산하는 발걸음이 사풋하지 않았다. 취재가 아니었다면 아니 오를 길이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30㎞ 정도 떨어진 도시 브카시에 위치한 이곳 반타르 그방(Bantar Gebang) 매립지는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다. 부지 면적만 축구장 140개 넓이(100㏊)다. 기자가 오른 산만한 쓰레기 매립장(zone3)이 5개나 있다. 자카르타 1,000만 인구가 먹고 쓰다 버린 쓰레기 7,000~8,000톤이 매일 모인다. 쓰레기를 부릴 차례를 기다리는 트럭들이 명절 귀성길 장면처럼 종일 늘어서 있다. 내비게이션조차 길을 몰라서 헤매기 십상이고, 쓰레기의 압력 탓에 도로가 여기저기 뒤틀리고 패여 보통 차로는 드나들 수도 없다.
쓰레기산에서 주운 재활용 쓰레기로 삶을 이어가는 넝마주이는 6,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쓰레기산 외곽에 형성된 마을엔 집마다 도매상에게 넘길 재활용 쓰레기 가마니가 가득하다. 악취가 평생 몸에 스며든 대가로 한 달에 버는 돈은 이 나라 최저임금의 절반(약 10만~16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당이 5,000원도 안 되는 셈이다.
제아무리 고약한 가난도 새싹들의 배움을 막을 수는 없다. 쓰레기산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투나스 물리아(Tunas Mulia) 자연학교엔 부모의 간난신고를 말끔히 갚아주고도 남을 빛나는 아이들 225명이 공부하고 있다. 투나스 물리아는 ‘고귀한 새싹’이라는 뜻이다.
교사들은 모두 무료로 봉사하고, 아이들은 학비를 지원받고, 교실은 서너 개밖에 없어 이름에 ‘자연(교실 바깥도 학교라는 의미)’을 붙인 빈한한 학교지만 교정은 말끔하다. 닭과 염소도 뛰논다. 이아틱(50) 교장은 “주변에 쓰레기산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교내 청결을 최우선으로 챙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22~25일 학교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우리나라 환경부 산하 환경공단과 현지 협력업체 팍스 글로벌 직원들이다. 이들은 학교 외벽과 담장 등을 페인트칠하고, 알록달록 곱게 히잡을 쓴 아이들에게 제기차기, 태극부채 만들기 등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며 함께 놀았다. 팍스 글로벌은 학교에 없던 컴퓨터 20대를 기증할 예정이고, 환경공단은 60㎡ 규모의 두 칸짜리 컴퓨터 교실을 지어주고 있다. 마이클 서(53) 팍스 글로벌 대표는 “열악한 환경에도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 노고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안토(47) 학교 이사장은 “말레이시아 고등학생들이 방학마다 학교에 봉사를 오지만 한국인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부트리(8)양은 “(반짝거리는) 제기가 예쁘다”고 말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고귀한 새싹들은 낯선 나라가 선사한 특별한 호의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신(新)남방 정책을 좇아 너도나도 인도네시아를 찾아와 고급 호텔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즘, 이런 방문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계산된 행위일지라도, 시작이 아름다우면 과정과 끝도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기억 한편에 소중하게 살아있을 테니.
브카시=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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