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ㆍ경제협력협정(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과정의 협상 기록을 일부 공개하며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이미 해결됐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협상 기록 중 일본 자국에 유리한 부분만 의도적으로 발췌 공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가 내달 2일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로부터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기 앞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기간 추진 중인 외교적 해결을 위한 담판에서 이들 기록을 레버리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30일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전날 오후 출입기자단에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설명하면서, 대일청구요강과 당시 교섭의사록 등 2건의 문건 일부를 공개했다. 대일청구요강은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이 일본 측에 제시한 8개 항목이다. 외무성이 공개한 부분에는 ‘피징용 한인(강제동원 피해자)의 미수금, 보상금 및 그 밖의 변제를 청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외무성은 또 1961년 5월 10일 진행된 협상단 소위원회의 교섭의사록 일부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측이 “개인에 대해 지불하기를 바라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한국 측은 “국가로서 청구해 국내 지불은 국내 조치로서 필요한 범위에서 한다”고 답했다. 당시 한국 측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관련해선 “강제적으로 동원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상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 측은 이러한 협상을 거쳐 한국 측에 무상 3억달러와 유상 2억달러를 제공하고, 청구권 문제와 관련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명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외무성 간부는 “한국 측은 협상 과정에서 보상을 요구했고, 청구권 협정에 위자료가 포함된 것은 명백하다”며 “한국 주장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수출 규제 등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진행하면서 ‘정치적 협상’으로 한국 정부를 끌어내기 위해 한일 청구권 협정 과정을 꺼내 들었지만, 국제무대에서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외교부는 이날 일본 정부의 문건 공개에 대해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가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대법원도 심리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이미 고려해 최종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61년 교섭의사록 내용은 한일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며 13년간의 교섭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된 내용도 아니다. 또한 일본 외무성 문서에서 언급된 ‘보상’은 공권력의 적법 행위에 대한 대가를 뜻하지만, 대법원은 식민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일제강점기에 당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판결했다는 점에서 양측 간 해석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한일 청구권 협상 관련 기록 공개와 관련해 “새로운 문장이나 자료를 공개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측 생각을 대외적으로 설명해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며 “앞으로도 관련 대처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외무성의 외교문서 공개는 8월 2일로 예상되는 일본 각의(국무회의)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앞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한 일본 측 주장을 알려 명분을 축적하겠다는 측면과 함께, 한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추가규제 동결을 위해서는 강제동원 배상에 대한 한국 측의 전향적인 방안 제시가 필요하다는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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