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 법안 3개 공개… 공무원 5급 이상도 노조 활동 허용
소방관ㆍ대학교원도 노조 가입… 업무 특성상 파업권은 허용 안 해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제87ㆍ98호) 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동관계법 입법안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면서도 기업별노조중심 등 국내 현실을 고려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우선 모든 형태 노조에서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되 동시에 기업별노조 임원자격은 재직자로 한정했다. 이들이 사업장 내에서 조합활동을 할 때 사업장 출입과 시설사용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 등에 따라 제한을 둘 수 있게 했다. 현행 노조법은 원칙적으로 근로자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초기업노조(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ㆍ업종ㆍ지역 단위로 설립된 노조)에는 실업자와 해고자도 가입하거나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안대로면 A기업 노조가 ‘해고자나 퇴직자도 노조 가입을 받겠다’고 내부 규약을 정하면 해고자도 A기업 노조원이 될 수 있다. 다만 근로계약이 없는 조합원이 개별기업의 단체교섭 등에 참여하면서 기업 운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해고자ㆍ실업자 노조원의 활동에 제약을 두기로 했다.
공무원들의 노동3권도 강화된다. 기존에는 6급 이하 일반직ㆍ별정직 공무원 등만 공무원노조 가입이 가능했는데, 이런 직급 제한을 삭제하기로 했다. 다만 직무 성격상 ‘지휘ㆍ감독자 및 총괄업무에 종사하는 자’의 가입은 제한한다. 같은 5급 공무원이라도 관리자 직책을 맡았다면 노조에 가입할 수 없고, 실무에 종사하는 경우만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새로 가입할 대상이 많지는 않겠지만 직무제한을 폐지함으로써 공무원 노조 가입 대상을 확대했다는 상징성이 있다. 이밖에도 소방공무원, 대학교원의 노조가입이 허용된다. 고용노동부는 “ILO 협약 비준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결권 보장키로 했지만, 행정서비스를 중단했을 때 대응수단을 찾기 어려운 업무특성상 파업권 제한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실업자ㆍ해고자 노조가입 허용, 공무원 노조가입 범위 확대 등이 노동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면, ‘파업 시 사업장 내 시설점거 금지’명문화는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조항이다. 다만 점거 금지 대상을 ‘생산 및 주요업무시설’로 규정했고, 구체적 기준은 대통령령에서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점거 금지를 반대하는 반면, 경영계는 운동장이나 출입구 등이 포함된 사업장 내 쟁의 자체의 금지를 요구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갈등의 씨앗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지급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삭제하되 법에서 규정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한도 안에서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고,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경영계가 요구했던 파업 시 대체고용금지 삭제는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이번 정부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안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한의 입법안’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입법안이 나오기까지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상황에서, 국회 통과를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7월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관련 법개정 합의안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노사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집단인 공익위원들이 모여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합의안을 내며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권고했다.
이번 정부안은 지난 4월 15일의 노사정위 공익위원최종안을 골자로 만들어졌지만,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에서 ‘노조 아님’ 통보제도를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을 삭제하는 내용은 빠져있다. 이는 전교조의 법외노조화와 직결되는 조항으로 여론의 부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정비 방식도 비교적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출발’로서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법령에 비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내용들”이라며 “부족한 부분은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도 “공익위원안과 달리 산별교섭 활성화 대책이 부족한 측면도 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수준의 결과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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