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한국전쟁 당시 북파공작원으로 활약했던 고 이순(1927~1992)씨 아들 영석(65)씨는 아버지 명예를 되찾기 위한 5년 투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어 보상금을 줄 수 없다”던 국방부 산하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2심 승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육지를 점령한 북한군과 해상을 장악한 미 해군 함정 사이 대치가 이어지던 함경남도 영흥만, 고인은 ‘뗌마’라 불리던 목선에 공작원을 태워 적지로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육군첩보부대(HID) 소속이긴 했지만 민간인 신분이다 보니 ‘군번 없는 군인’이었다. 냉전의 여파로 휴전 이후 정부는 영석씨 부친을 비롯한 북파공작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2004년 뒤늦게 보상법을 만들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자료가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영석씨는 두 차례 소송에서 이겨 부친의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표정은 밝지 못하다. “북파공작원들 명예를 회복시키고 보상을 하라는 게 입법 취지인데 어떻게든 안 주려는 국방부 태도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국방부는 고인의 공적을 부인하기 위해 여러 논리를 끌어들였다. 2014년 영석씨가 보상금을 신청하자 3년 뒤 “자료가 없어 첩보부대 채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소송을 내자 “호송임무는 위험을 감수한 특수임무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호송임무는 공작 수행에 필수불가결하며, 수시로 적들의 공격을 받아 희생됐다”며 1심 판결(본보 지난해 12월 13일자 1면)이 영석씨 손을 들어주자 이번엔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다”, “당시 해상은 미군이 장악했으니 적지가 아니었다” 같은 논리를 내놨다. 2심은 국방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국방부가 보상 여부를 엄격히 가리는 건 그들의 업무다. 하지만 반세기 넘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이들에게 스스로 입증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게 과연 보상법의 취지에 맞느냐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법원은 판결문에다 “위험한 임무 수행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이후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으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그들이 감당한 공로와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려는 것이 보상법의 제정 취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국방부의 태도는 최근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이 과거사 반성에 적극 나선 것과도 대조적이다. 특히, 검찰은 잘못된 기소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과거사 피해자들을 찾아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거나 과거사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무리한 상소를 자제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이들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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