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생산성 저하로 고임금 일자리 수요도 줄어든 탓”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률이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전보다 임금 불평등은 줄었지만, 생산성 저하로 고학력 일자리 수요가 정체돼 오히려 전반적인 임금 수준은 향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저임금 계층을 위한 정책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도 정책적 노력을 함께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선임연구위원)은 30일 KDI 정책포럼에 실린 ‘임금격차는 어떻게, 왜 변해 왔는가’ 보고서를 통해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고 소장은 “2008년 이후 노동자의 임금상승률이 정체를 보인 가운데, 불평등은 줄어드는 하향 평준화 양상이 지속됐다”면서 “첨단산업 생산성 둔화에 따른 고학력 노동자 수요 정체가 임금 상승률 둔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고 위원은 1980년 이후 노동자 임금 변화를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 1기인 1980~1994년에는 임금 불평등 격차(상위 20% 계층의 임금에서 하위 20% 계층 임금을 뺀 값)가 줄어들었지만, 2기(1995~2007년)에는 이 격차가 다시 확대됐고, 3기(2008~2016년) 들어서 또 다시 불평등 격차가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80년대 이후 대체로 임금 불평등 정도가 지속적으로 확대된 선진국과는 다른 흐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임금 상승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위임금(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임금) 노동자의 시간당 실질임금 상승률은 1기 9.2%(이하 연평균 기준)→2기 4.0%→3기 1.1% 순으로 급속히 낮아졌다. 80년대에는 매년 9.2%씩 늘어나던 중간수준 노동자의 임금이 2010년대 들어서는 고작 1.1%씩 증가에 그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상위 10%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률도 1기 6.6%에서 3기에는 1.1%까지 둔화됐고, 저임금(하위 10%) 계층의 상승률도 1기 9.2%에서 3기 3.0%로 뚝 떨어졌다.
임금 불평등 격차가 줄어든 것도 1기와 3기의 성격이 각각 다르다. 1기에는 중화학공업이 본격 성장하면서 고졸 수준의 ‘중급 숙련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수요가 많았던 만큼, 자연히 고졸 노동자 계층의 임금상승률이 더 높았고 그 영향으로 고임금 계층과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1995년 이후(2기)는 컴퓨터가 보급되는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서 이를 활용할 능력을 갖춘 대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시 대졸-고졸간 임금 격차가 벌어졌다. 고 위원은 “1970년대 경공업 중심에서 19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1990년대 이후에는 첨단산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대졸자 등 고숙련 노동자의 수요가 점차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3기 들어서는 경제 전반의 혁신성과 생산성이 저하되면서 고임금ㆍ고학력 노동자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 상하위 계층간 임금 격차가 좁혀진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고 위원은 “2008년 이후의 임금불평등 완화는 고숙련 노동수요 정체와 임금 정체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전반적인 임금 상승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산업 구조조정 등 기술 진보에 초점을 맞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