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제 아버지 세대는 해방과 전쟁, 그리고 가난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교련 선생님은 아이들 무르팍을 걷어차면서 너희는 전쟁을 모른다고 혀를 찼었고, 대학시절 교수님들은 유학가서 접시닦던 추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그다지 공감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세대가 떠안은 숙제도 무거웠으니까요. 캠퍼스에는 최루탄이 날아다녔고, 소식 끊긴 선배가 오랜만에 보낸 편지엔 구치소 검열필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아수라장에서, 전쟁과 가난이 없으니 니들은 행복한 거라는 선배들의 말씀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어수선한 가운데, 최근 작은 논쟁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관 한분이 대기업들이 능력 있는 국내 중소기업을 도외시하고 일본 기업과 거래해 온 것이 이 위기의 한 원인이라고 비판했는데, 관련 대기업의 경영자가 이에 대해 현실과 다르다고 응답했던 것입니다. 장관님이 해당 대기업이 수십 년 전부터 중소기업을 도왔더라면 현실은 지금과 달랐을 거라고 점잖게 타이르면서 이야기는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한 수 가르치는 것이 최근 유행입니다. 최근 한두 달 사이만 해도 차량공유서비스의 경영자에게, 국내 굴지 인터넷 기업의 창업자에게, 그리고 대기업의 경영자에게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이런저런 훈수를 두었습니다. 경기가 어려우니 투자를 하라는 요청도 있었고, 중소기업을 좀 더 배려하라는 꾸짖음도, 혁신에 뒤처진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기업의 역할임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주장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이 분들이 기업들은 쉽게 돈을 잘 벌고 있으면서도 탐욕을 부리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합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더 이상 그렇게 쉬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높은 분들이 가진 기업에 대한 인식은 그들이 젊던 수십 년 전, 정경유착을 통해 쉽게 사업을 하던 기업들에나 맞는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경쟁은 세계화되었고, 많은 기업들은 발 한번 잘못 딛으면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요즘 기업들의 행동은 대체로 탐욕이 아니라 합리성의 산물입니다.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그것이 품질과 가격 측면에서 최선의 대안이기 때문이지 국내 기업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기업이 최적의 대안이 아닌데도 특정 국내 중소기업과 거래하려고 한다면 주주들이 흔쾌히 동의할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 또래들이 모여서, 세상의 변화를 애써 모른 척하면서 감상에 젖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포함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두렵습니다. 차량공유서비스를 써보지 않은 교통책임자, OTT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방송책임자, 민간 동영상 교육서비스를 경험해보지 않은 교육책임자들이 모여서 우리 시절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희극보다는 공포물에 가깝습니다.
누구에게나 청춘의 기억은 아름답고 강렬합니다. 스무 살 전후 듣던 노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좋고, 첫사랑의 기억은 꺼내 볼수록 애틋합니다. 그래서 한용운 시인은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 운명을 바꾸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추억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스무 살 전후의 경험을 근거로 오늘의 세계를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젊은 의사결정자와 든든한 선배 후원자. 돌이켜보니 그것이 젊은 날 우리가 꾸었던 꿈인 것도 같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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