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장마의 끄트머리에 그래도 제법 비가 쏟아져 해갈이 됐다. 장마전선이 물러가니 햇볕이 짱짱하다. 습기 찬 이부자리와 돗자리를 옥상에 널러갔다. 빨래건조기보다는 땡볕이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소독해 줘서 좋다. 빨래줄에 때 이른 고추잠자리 한 놈이 목을 빼고 앉아 있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의 7월령(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하소.” 거풍이나 포쇄는 바람을 쐬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곡식이나 옷만 말린 게 아니다. 선비들은 책을 말렸다. 처서를 전후해 볕 좋고 바람 시원한 날 서재의 책을 마루나 그늘에 펼쳐놓고 말렸다. 곰팡이나 책벌레를 막기 위해서다.
조정에는 그 일을 전담하는 포쇄별감이란 직책이 춘추관에 있었다. 장마가 끝나면 길일을 택해 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에서 실록을 한 장씩 넘기며 말리고 기록을 상세히 남겼다. 매우 중요하고 엄격한 국사였다. 조선왕조실록이 수백 년을 견뎌내고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도 선조의 이런 지혜와 정성 덕이다.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조선왕조실록을 온전히 지켜낸 전주 사고에서는 매년 포쇄를 재현하는 행사를 한다.
조금은 민망한 곁가지 이야기지만, 그 무렵 사대부들은 책 말고도 사내의 그곳을 말리는 풍습도 있었다 한다. 양반 체면에 계곡에서 알몸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떼 지어 높은 산에 올라 벌렁 누워 바지춤을 내렸다. 그야말로 최상의 건강 피서법이다.
이부자리를 걷으러 옥상에 올라가면서 나도 책장 구석의 오래 된 책 몇 권을 들고 갔다. 몇 장이 서로 엉켜 붙기도 했고 눅눅하고 색이 바랬다. 곳곳에 밑줄 친 대목이 보인다. 젊은 날의 내가 거기에 있다. 퀴퀴한 책 냄새가 한 줄기 바람에 실려 간다. 그 냄새가 싫지만은 않다. 나는 전자책에 익숙하지도 않지만 종이책이 여전히 좋은 건 냄새와 질감 때문이다.
장마전선이 퇴각하니 이제 “돌격 앞으로”다. 어디를 가야 하나. 그런데 1인 가구가 2인 가구를 앞질러 가장 보편한 가구 형태가 되다 보니 이른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풍조도 생겨났다. ‘홈캉스’ ‘호캉스’ ‘몰캉스(쇼핑몰)’ ‘북캉스’니 하는 것들이다.
‘방콕’ 하기에는 미드 몰아보기나 공포 영화 섭렵이나 게임 삼매경도 좋지만 수박냉채 옆에 놓고 다리 쭈욱 뻗고 슬렁슬렁 책장을 넘기는 북캉스도 잘 어울린다. 독서는 독서를 낳는다. 예부터 ‘간서치(看書癡)’라는 단어가 있다. (세상을 등지고)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조선의 임금들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건 사약(賜藥)만이 아니었다. 독서 휴가도 하사했다. 임금이 내리는 휴가를 ‘사가(賜暇)’라고 했다. 젊고 촉망받는 문신들에게 길게는 3년까지 강제로 휴가를 줘서 책읽기에 전념토록 한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다. 세종부터 영조까지 300년 이상 계속돼 48차례에 320명이 휴가를 명받았다. 성종은 한강변에 독서당 세 곳을 지었다. 옥수동에는 동호당(東湖堂)이 있었는데 옥수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독서당고개가 여기서 나온 이름이다.
바캉스(vacance)의 라틴어 어원은 ‘비운다’는 의미이고 휴가의 ‘휴(休)’자는 사람이 나무 곁에서 쉬는 형상이다. 올해도 지지고 볶기 위해 대문을 나설 것인가.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독서 휴가를 하사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햇볕 좋은 날 젊은 날의 책을 꺼내 말려 보자. 말리는 행위보다 그 마음의 호사와 여유가 더 값질지 모른다. 한 장씩 바람에 말리다보면 도끼가 머리를 내려치듯 “유레카”를 외칠지도 모른다. 어지러운 이 세상 한번쯤 초연하게 선비 코스프레를!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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