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무역’은 실현되기 어렵다. 경제학의 ‘비교생산비설’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모든 교역국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각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영역에 경제 활동을 집중시킴으로써 저마다 가장 효율적인 생산 체제가 발전하고, 투자와 고용이 증대되면서 성장이 촉진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경제가 발전하고 비교우위 영역이 압도적으로 많은 선진국들에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자유무역은 글로벌 무역에서 확고한 제도로 자리잡지 못했다.
□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1995년은 자유무역주의의 전성기였다. 1947년 이래 자유무역 촉진을 위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가동됐지만, 각국의 이해에 따라 자유무역은 허울뿐이고 오히려 보호무역이 강화되곤 했다. 1980년대 초반에도 각국의 보호무역이 만연해 교역 축소 우려가 커졌다. 국제 교역에도 서비스ㆍ투자ㆍ지적소유권 이전이 급증하는 등 질적 변화가 나타났다. 보호무역에 대한 반동과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기존 GATT를 대체할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견인했고, WTO 체제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 WTO 출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불만 없이 수용할 단일한 자유무역질서를 만들려다 보니 무엇보다 공정한 ‘게임의 조건’을 마련하는 게 핵심 과제가 됐다. 제조업, 농업, 금융 등 분야별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교역 조건에 차이를 두는 ‘개도국 대우’ 등의 장치가 마련된 이유다. 하지만 WTO 출범 당시만 해도 단일 무역 질서에 따라 작동하는 통합된 세계 시장을 만드는 데 몰두했던 미국은 점차 개도국 대우 같은 장치가 자국에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불만을 갖게 됐다.
□ 불만은 중국이 G2로 부상하면서 폭발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가장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집권 이후 WTO 탈퇴론까지 들고 나선 건, 그만큼 미국 내에서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다. 최근 일본까지 WTO 규정에 거리낌 없이 도발하면서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감행하는 걸 보면,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면서 WTO 체제도 쇠퇴기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선진국들의 필요에 따라 WTO가 휘청거리는 게 꼭 유엔(UN)을 닮아 가는 것 같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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