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총선 고려한 생색내기 행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양정철 원장이 여권의 ‘경제 메신저’로 나섰다. 4대 재벌그룹 싱크탱크를 순회하며 “기업은 애국자다”, “대기업과 재벌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등 친(親)기업 발언을 쏟아 내면서다. ‘진보정권은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다’는 인식을 벗어나겠다는 것인데, 야당에서는 만남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양 원장은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비공개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일본의 무역규제와 관련해 정부나 정치권이 긴급히 해줘야 할 방안과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정교한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다”며 “당 정책위원회와 잘 상의해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LG경제연구원을 시작으로 25일 현대자동차 글로벌경영연구소와 이날 삼성경제연구소를 잇따라 방문한 양 원장은 다음 달 2일 SK경영경제연구소를 찾아 4대그룹 싱크탱크와의 만남을 완료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 원장의 행보는 대기업을 향한 여권의 ‘화해 제스처’로 보인다. 특히 한일 경제분쟁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경제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부품 국산화를 높이기 위해 대기업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양 원장은 실제로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같은 엄중한 경제 상황에서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이 애국자고 특히 세계시장에서 1등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기업들이 슈퍼 애국자”라며 “국제무대에서 국가대표 기업을 응원하고 돕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경제를 모른다’는 인식을 벗어나려는 시도로도 풀이된다. 양 원장은 23일 LG경제연구소와의 간담회 이후 “재벌과 대기업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벌의 부정적 측면은 극복해야 하지만, 경쟁력은 키워나가야 한다는 설명도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파고들 것”이라며 “여당으로서는 경제 운용의 중요한 축인 대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재계와 야당에서는 내년 총선을 고려한 생색내기 행보라는 비판적 지적이 나온다. 4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기업의 고충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며 “재계 의견이 실질적으로 여권의 경제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보여주기식 행보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은 “반기업 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한 민주당이 기업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려는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다만 양 원장이 여권 실세라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나 압력을 느낄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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