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스트 제외 임박… 유명희 “세코, 양자협의 거절”… 한국 의원단 31일 도쿄行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의 두 번째 단계인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결정을 앞두고 한일 관계가 기로에 섰다. 일본 측은 내달 2일 각의에서 전략물자 수출절차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인 가운데, 한국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시사하며 일촉즉발의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31일 한국 국회의원단이 도쿄(東京)에서 일본 정계 인사들과 의견을 교환할 예정으로 외교적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에선 21일 참의원 선거와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여름휴가 돌입으로 한국을 겨냥한 공세가 잦아들었지만, 수출규제와 관련한 일본 측의 강경 기류는 변함이 없다. 경제산업성이 1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여부에 대한 의견수렴에 4만건 이상이 접수됐으며 그 대부분이 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 측이 징용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된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규제 철회나 추가조치 동결의 명분이 없다는 게 일본 측 입장이다.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한국 국회의원단의 방일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29일 “한국이 징용문제와 관련해 건설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는 한 아베 총리는 당분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다”라고 보도했다. 징용문제에 대한 한국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9월 유엔총회와 10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11월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의 국제행사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무성 간부는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만 청구권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면 좋다”고 했다. 정치적 해결을 강조했지만 정상회담을 고리로 한국의 양보를 이끌어내겠다는 일본 측 강경 기류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주무부처인 경제산업성과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외무성 등 외교 접촉을 이어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경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전제이지만, 국내외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내밀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장관에게 다음달 베이징에서 열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의에서 면담 요청을 했는데 일정상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세코 장관은 “관계 없는 곳에서 발언을 계속하면 한국 자신이 국제적으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라며 면담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19일 초치 자리에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에게 외교 결례를 범했던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은 며칠 후 남 대사와 저녁 식사를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양국 외교 당국자들이 갈등 상황 속에서도 접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서청원 의원 등 한일의회외교포럼 소속 국회의원 10명이 31일 도쿄에서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을 만난다. 화이트 국가 제외 결정에 앞서 일본의 심중을 외교적으로 확인할 자리로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안보 분야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라며 “2016년 체결 이후 매년 자동 연장돼 왔다”고 말해 GSOMIA 연장 의향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로서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력할 과제는 확실히 협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