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SNS에서 보인 행태는 충격이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의 법률 보좌를 맡은 법학자라면서 한일 현안과 관련한 정부의 법률적 견해를 소상히 밝혔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해석하는 일본 측의 법률 논리까지 공개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사람은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매우 경솔하고 부적절한 행동이다. 외교전의 ABC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률만 강조하면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진다. 내가 외교 현장에서 만났던 타국 협상단의 법률 고문들은 좀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이 사람이 수줍어서가 아니다.
외교 전술에는 국제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법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법률적 견해는 그 속성상 일단 발표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초기부터 법률을 앞세우면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진다.
아마 일본은 조 전 수석의 발언을 기록해 두고 향후 여론전이나 자기 방어 논리 개발에 활용할 것이다. 가령 일본 측이 “대통령 법률 자문이 공개적으로 법논리를 밝히며 자신감을 표명하는데, 당장 중재나 국제사법재판소로 못 갈 이유가 뭔가”라고 역공을 펼치면 어쩔 건가?
둘째, 조 전 수석이 공개한 내용에 비추어 보건대 그의 국제법 수준이 매우 낮았다. 국제법에 대한 무지를 공개 고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조 전 수석은 확신에 찬 어조로 배상과 보상의 차이점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국내법적 개념이다. 국제법상 배ᆞ보상의 개념은 국내법과 좀 다르다. 국제법에서는 배ᆞ보상의 개념이 국내법보다 넓거나 혼용되기도 한다. 이것은 국제법 전공자가 아니어도 국제법 개론 강의를 듣거나 기초 외교실무를 익힌 사람은 대개 아는 내용이다. 국제법 전공인 서울대 C교수는 25년 전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논문에서 배ᆞ보상 개념의 국내법ᆞ국제법 간 차이를 설명했다. 이후 청구권협정을 다룬 논문들은 대개 참고 문헌에 이 논문을 올린다.
조 전 수석의 발언을 읽는 순간 그가 이 문제 관련 주요 논문들을 정독하지 않았고, 청와대가 외교부의 국제법 전문가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셋째, 조 전 수석의 행태는 청와대가 ‘그룹 싱크(Group Thinkᆞ집단 사고)’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그룹 싱크’란 정책 결정 참여자들이 비슷한 생각만 하거나 친한 사람들로만 구성될 때,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말한다. ‘그룹 싱크’가 발생하면 정책 실패 가능성이 올라간다. 그래서 외교정책 이론에서는 ‘그룹 싱크’를 피하기 위해 활발한 토론과 폭넓은 의견 수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은 참모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법무 참모 조국이 할 일은 비판자들을 ‘친일파’라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정교한 법적 논리를 개발하면 된다. 오히려 찬반 양론 전문가들을 모아 심도 있는 토론을 장려했어야 했다. ‘친일파’몰이를 하면 어느 전문가가 입을 열겠나? 국내 국제법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일본이 모를 리 없다. 국내적 비판은 ‘친일’이 아니라 일본의 진짜 공격을 대비한 예방주사다.
조 전 수석은 법무 참모로서 실격이다. 직무유기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무지하고 경솔한 법무 참모의 월권을 청와대의 누구도 견제하지 못한 점이다. 전형적인 ‘그룹 싱크’ 상황이다.
이래서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나? 이렇게 싸움의 준비가 부족한데도 목청만 높이니 정말 한판 외교전을 펼치려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 국내용인지 의구심까지 든다.
다행히 조 전 수석은 청와대를 떠났지만 그의 과오에서 청와대가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조국이 속출할 것이다. 그때는 온 나라가 ‘그룹 싱크’에 빠져들 것이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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