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징용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는 한 일본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9일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만날 가능성이 있는 행사는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다. 이 때까지 일본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는 사태를 불러온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국의 변화된 태도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경우 유엔총회에서도 한일 정상이 대화하는 기회를 마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도 “공은 한국 측에 넘어가 있다”며 한국 측의 대응을 촉구하고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총리관저 관계자는 현재의 한일관계에 대해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에 가까운 상황이지 않느냐”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안보우대국인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는 정령(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도 일본 측의 조치를 대법원 판결의 경제 보복이라고 규정,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어 당장의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국 정상의 참석이 예상되는 국제회의는 9월 유엔총회 이후에도 10월말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아세안)+3(한ㆍ중ㆍ일) 정상회의, 11월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이 잇달아 예정돼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징용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제안을 하지 않는 한 국제회의 자리에서 정상 간 대화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연내 한ㆍ중ㆍ일 정상회의가 중국에서 개최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지만 이 역시 한일관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외무성 관계자는 “구체적인 일정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외무성 간부는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은 존중하지만 청구권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해결됐다’는 성명을 내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이 구체적인 대응을 제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산케이신문은 전망했다.
이와 관련, 한국 측은 징용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해 일본 측의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 측은 지난달 ‘1+1안’(한일 기업이 기금을 마련해 위자료 배상)을 바탕으로 하는 해결책을 제안했으나, 일본 측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이미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거부했다. 이후 지난달 28~29일 열린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는 한국 측이 타진한 한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성과 있는 대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 양 정상의 만남은 공식 환영행사 당시 8초간 악수에 그쳤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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