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민들레’의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도전기
“예술 작품은 투자를 위한 생산성과 거리가 멀어요. 특히나 저희가 올리려는 공연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극이었죠. 매표 관객을 목표로 했다고는 하지만, 흥행 뮤지컬도 아니고 시장 규모도 크지 않으니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작품만 믿고 순수하게 투자를 해주신 분들이 많았다는 게 놀랍고 감사했죠.”
극단 민들레는 올해 초 어린이극 ‘와! 공룡이다’를 서울 무대(1월4일~2월3일 세실극장)에 올리기에 앞서 무대 설치 비용과 배우 출연료 등을 마련해야 했다. 송인현 극단 민들레 대표는 “매표 관객을 살려내야만 공연 생태계도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공공 지원금을 받는 대신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으로 투자 플랫폼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했다. 지난해 11~12월 투자 공모를 통해 3,300만원을 모았다. 다행히 작품이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낸 덕분에 지난 4월 연이율 9%의 수익금을 얹어 투자금을 돌려줄 수 있었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은 여러 투자자가 조금씩 모아 투자금을 형성하고 투자자 개인은 이를 비상장주식이나 채권의 형태로 돌려받는 형태의 크라우드펀딩을 말한다. 사업자금으로 만들어 낸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후원자에게 제공하는 기존 후원형 크라우드펀딩과는 달리, 투자에 성공할 경우 원금에 높은 이자율로 이자수익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은 수익성 높은 문화기획사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아동ㆍ청소년극 전문 극단인 민들레의 도전은 이례적이었다. 순수예술 분야에서 수익을 남기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상환 부담감이 컸다”면서도 “예술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결국 재생산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렇게 보면 이 모델이 오히려 타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의 장점으로 “확실한 자본금의 존재”를 꼽았다. 그는 “공공 지원금은 용처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변화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며 “투자금을 받으니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어 유용했다”고 말했다. 물론 펀딩에 성공하면서 ‘와! 공룡이다’가 흥행작품으로 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점도 소득이었다. 송 대표는 10월 중 서울에서 재공연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1월 이후 시행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제도는 극단 민들레처럼 투자를 받기 어려운 공연ㆍ영화 등 문화기획 사업, 소규모 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이 쉽게 자금조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기업도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가치 있는 투자와 수익성을 두루 따지는 소액 투자자들이 주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그린플러그드 서울’ 등의 공연에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해 수익을 얻었다는 직장인 서장현(30ㆍ가명)씨는 “크라우드펀딩 투자 대상 기업 가운데 소득공제 혜택이 적용되는 기업이 많아 투자를 시작하게 됐다”면서 “적은 돈으로 소득공제 혜택은 물론이고 예적금 이상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어 일반 직장인에겐 특히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말혔다.
다만 투자형 크라우드펀딩도 투자인 만큼 당연히 사업의 성패에 따라 투자금 회수 여부가 갈리게 되므로, 투자 대상 기업과 산업에 대한 분석 능력이 필요하다. 투자자 자격 조건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금액도 제한돼 있다. 일반투자자의 경우 본인 명의의 증권회사 계좌만 개설하면 참여할 수 있지만 한 해 동안 기업당 500만원, 총 1,000만원 이상의 투자는 불가능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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