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억할 오늘] 블랙 토트 데이(7.31)

입력
2019.07.31 04:40
26면
0 0
영국 해군의 럼주 배급 장면. 물 대용으로 알코올을 배급하던 16세기 이래의 전통이 1970년 7월 31일 중단됐다. thewhiskyexchange.com
영국 해군의 럼주 배급 장면. 물 대용으로 알코올을 배급하던 16세기 이래의 전통이 1970년 7월 31일 중단됐다. thewhiskyexchange.com

영국 정부가 16세기 왕립해군 창설 이래 해상의 군인들에게 매일 나눠 주던 술 배급을 1970년 7월 31일 중단했다. 병사들은 의회 결정에 항의하며 전통의 끝을 애도하는 의미로 자신들끼리 추모행사를 시작했다. 마지막 배급일에 일부 병사는 검은 완장을 찼고, 한 훈련부대에서는 드럼과 백파이프 군악대까지 가세한 가운데 가짜 관을 운구하는 장례식을 치렀다. 당시 배급된, 아니 배급이 중단된 술은 해적들과도 인연이 깊은 럼주였다. 저 날을 영국 해군은 ‘블랙 토트 데이(Black Tot Day)’라 부른다.

애초에 술은 물의 대체재였다.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커지고 해군 작전 무대가 대양으로 확장되면서 저장성이 약한 물만으로는 수분 보충이 불가능해졌다. 와인과 알코올 도수 1% 내외의 맥주가 먼저 지급됐다. 하지만, 물보단 나았지만 이내 변질되곤 했다. 17세기 중엽(1655년) 스페인이 자메이카를 점령한 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인도제도의 럼주를 알게 됐다. 럼주는 맥주와 물의 대체재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바다를 누비는 뱃사람들은, 해적이든 해군이든, 물과 맥주와 럼주를 함께 싣고 다녔다. 물이 떨어지면 맥주가, 맥주가 떨어지면 럼주가 물을 대신했다. 몽땅 럼주가 아니었던 까닭은, 상대적으로 비싸기도 했지만, 그보단 알코올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국 해군은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물로 럼주를 희석(4: 1)해 하루 두 차례 군인들에게 배급했다. 19세기 초와 중반 두 차례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여 최종적으로는 하루 71㎖를 배급했다. 그나마도 장교의 럼주 배급은 1881년 이후 아예 중단됐다. 소주잔 기준 약 한 잔 반 분량이었다.

1969년 말부터 영국 하원의 ‘럼주 논쟁’이 시작됐다. 논쟁, 즉 럼주 배급 반대의 주된 이유도 술이 전투 역량 및 안전 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거였다. 항해 및 전투 장비도 돛 달고 심지에 불붙여 대포 쏘던 시대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예산 절감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알코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당연히 대항해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오래된 해군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며 반발한 전통주의자들도 물론 있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