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USTR에 “모든 수단 강구하라”… 中이 주된 타깃이지만 한국도 언급
정부 “향후 협약에만 해당… 농산물 관세ㆍ보조금 축소 당장은 없을 것”
세계무역기구(WTO) 안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나라들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도한 특혜를 중단해야 한다”고 공격에 나섰다. 개도국 지위를 활용해 취약한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경우에 따라 식량주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민감한 언급이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가 당장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현재의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 정책에 미칠 영향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WTO 차원에서 변화가 없을 경우 개별국에 보복 가능성을 예고한 만큼, 앞선 철강, 자동차 분야의 관세 압박처럼 농업 분야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중국ㆍ한국 등에 개도국 지위 안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비교적 발전된 국가가 WTO에서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는 내용의 행정각서(메모랜덤)를 무역대표부(USTR)에 보냈다. 이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게 중론이지만,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도 덩달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트럼프는 실제 이번 지시문서에서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나라로 한국, 멕시코, 터키를 언급했다.
WTO에서 어떤 국가가 개도국인지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선언'이다. 한국은 1995년 WTO 출범 당시 농업 분야 관세와 보조금 감축 규모를 개도국 수준으로 정해 보고하면서 개도국임을 선언했고, 지금까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농업 외 분야에서는 개도국의 지위를 활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농업분야 관세율 감축 기준은 개도국과 선진국 평균이 각각 24%와 36%였고, 보조금 감축 기준도 개도국은 13.3%, 선진국은 20%이 평균이었다”며 “우리나라는 개도국 기준에 맞춰 감축률을 통보해 개도국 지위를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장 개도국 포기해도 변화 없어”
WTO 체제에서 개도국 지위는 여러모로 유리하다. 관세율 인하 같은 협약 이행에 더 많은 시간이 허용되고 통합보조금(AMS) 규제도 느슨하게 적용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쌀, 고추, 마늘, 양파, 감귤, 인삼, 감자와 일부 민감 유제품 등을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관세감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는 쌀 관련 16개 제품을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수입 쌀에 관세 513%를 부과하고 있으며, 변동직불금 지급 등 농업분야 AMS도 지난해 최대한도(1조4,900억원)를 지원했다.
일각에선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고 선진국이 되면 이런 혜택이 일시에 사라질 것을 우려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WTO 개도국 지위에 관한 논의 동향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선진국이 되면 쌀 등 특별품목에 부과된 513%의 관세를 154%까지 낮춰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우려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당장 오늘 개도국 포기 선언을 해도 이는 향후 협약에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말했다. ‘쌀 관세가 154%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역시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2008년 농업분야 제안서를 바탕으로 한 계산인데 이는 이미 국제적으로 사문화된데다, 만장일치제의 WTO 구조상 기존 개도국들이 반발하는 한 새 규약이 채택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개별 보복 가능성
다만 향후 미국과의 양자 무역에서 보복을 당할 우려는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안에 이 문제에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각서에서, 지난해 철강 관세 근거로 활용했던 ‘무역확장법’을 개도국 지위 유지 국가에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최소 1만2,056달러)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네 가지 기준 중 하나라도 속하면 개도국이 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이 네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된다.
정부 관계자는 “만약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다방면에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미국의 으름장”이라며 “관계부처들과 대응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