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취약 종목’ 국가 인증 전수조교 박영애씨
청주여성교도소서 기초부터 ‘한땀 한땀’ 강의
재소자 35명 “매주 기다려… 동료들과 사이 좋아져”
“출소한 뒤에도 꼭 배워보고 싶어요.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끼고 생계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더군다나 국가무형문화재급 선생님에게서 배운 기술이니 그냥 두기엔 아깝잖아요.”(수감 14년 차인 김현주(가명ㆍ44)씨)
25일 오후 충북 청주여자교도소 내 수감복 제작 공장. 수형자 35명이 저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박영애(55)씨 앞으로 모여들었다. 천 뭉치를 가슴에 안은 수형자들은 박씨가 “바느질을 시작하라”고 말하자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바늘에 실을 뀄다. 이날 수형자들이 제작한 건 한국 고유 복식 중 하나인 두렁치마. 조선시대 여성들이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를 둘러주기 위해 제작하던 옷이다.
수형자들 앞에 강사로 나선 박씨는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針線匠)의 전수교육조교(전수조교)다. 침선은 바느질로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전통 기술이다. 전수조교는 인간문화재는 아니지만 전통을 전승해 갈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국가 인증 장인이다. 현장에선 준(準)인간문화재로 평가 받는다. 침선장 보유자로 2007년 별세한 정정완 선생의 제자인 박씨는 1988년 침선에 입문해 2014년 전수조교로 인정받았다. 지난 4월부터 16주 동안 매주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기본 바느질법에 대한 기초교육부터 배냇저고리, 두렁치마, 버선, 턱받이 제작 실습을 수형자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박씨가 교도소에까지 발을 들인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침선은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가 전승취약종목(7월 현재 총 144개 종목 중 35개)으로 지정할 정도로 전승자가 거의 없는 종목이다. 현재 침선장 보유자는 정정완 선생의 며느리인 구혜자씨 1명뿐이고, 전수조교도 박씨 1명 밖에 없다. 정부로부터 전수교육 이수증을 받은 이수자(전수조교 이전 단계)도 13명뿐이다. 다른 종목은 이수자가 수십 명에 달하기도 한다.
박씨는 “전통복식에 대한 관심이 급감하고 생계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탓에 침선을 본격적으로 배우려는 이들 규모가 상당히 줄었다”며 “전국 대학의 전통복식 관련 학과가 전부 사라졌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박씨는 “수형자 대상 교육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침선이라는 전통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침선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전승자는 크게 줄고 있다. 고유 문화를 향한 관심이 적어진 데다 사회적 수요도 줄어든 탓이다. 2002년 202명이었던 보유자는 지난 6월 말 기준 166명으로 24.5% 감소했다. 대안 마련에 공을 들여 온 문화재청은 최근 교육ㆍ교화 프로그램 다양화에 나선 법무부와 지난 3월 손을 맞잡았다. 전국 4개 교도소에 국가무형문화재 전수조교나 이수자를 파견하는 ‘수형자 대상 무형유산 교육 및 전통기술 전수 사업’을 기획했다.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로는 악기장 전수교육조교인 윤종국씨가, 전남 목포교도소로는 소반장 이수자인 김영민씨가, 충남 공주교도소로는 소목장 이수자 홍성효씨가 나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침선을 향한 수형자들의 의욕은 높다. 직업교육이나 교화 활동 중심인 교도소 내 활동과 달리 전문가의 기초 기술이 일일이 수형자들에게 전수되는 덕이다. 출소 후 의류공장이나 수선센터 등에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수형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13년째 복역 중인 박은영(가명ㆍ43)씨는 “바늘 하나라도 사라지면 찾을 때까지 방에 복귀할 수 없는 엄격한 수업이지만 매주 이 시간만 기다린다”며 “평소 바느질을 해본 경험이 손에 꼽는 데다 전통복식을 잘 알지도 못했는데 침선에 큰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교화 역할도 상당하다. 교도소 측은 수형자들이 침선을 배우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전통기술에 대한 관심도 깊어진 것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9년째 복역 중인 이순희(가명ㆍ60)씨는 “오랫동안 동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잦은데 바느질을 하면서 서로 돕고 의논도 해 다툼이 많이 줄었다”며 “무엇보다 울분이 사그라들고 스스로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전통의 맥을 이으려는 보유자와 전수조교의 고군분투는 교도소 밖에서도 한창이다. 전국 135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체험 강좌가 수시로 열려 있고, 한국문화의집 등지에서도 전통공예건축학교가 주관하는 14개 종목 정규 교육(올해 기준)이 진행 중이다. 임승범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연구관은 “일반에 전통 기술 전수 필요성을 알리고 교육 목적도 최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주=글ㆍ사진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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