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문화계로까지 확산될 조짐 속에서 역설적으로 일본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책들도 있다. 폭주하는 아베 신조 정권과 극우 세력의 실체를 조명하고, 이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일본 ‘저격’ 서적들이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룰을 파괴하는 일본의 막무가내 행태는 어디서부터 기원하는 것일까. 이들이 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일본을 알아야(知日), 일본을 넘어선다(克日)”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일본 사회와 구조를 파헤치는 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의 실체를 추적한 ‘일본회의의 정체’(율리시즈)는 출간된 지 2년 만에 뒤늦게 조명되고 있다. 아베 내각 각료와 집권당인 자민당 의원들 대다수가 속해 있는 일본 회의는 일본 우경화를 주도하는 극우 정치 세력의 산실이다. 최근 자리에서 물러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2일 마지막으로 참석한 수석보좌관회의에 이 책을 들고 나온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대일 여론전의 선봉에 서 있는 조 전 수석이 선택한 책인 만큼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사진이 언론에 노출된 이후 책은 한 때 품절되기도 했다.
율리시즈의 김미성 편집장은 “2017년에 초판으로 2,000부를 찍었지만 잘 팔리지 않아 1,100부정도 창고에 쌓여 있었는데 책이 사진 찍힌 날 재고를 전부 소진했다. 부랴부랴 2,000부를 더 찍어 출고했지만, 주문은 계속 들어오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일본 내부에서 쓴 소리를 해온 양심적 지식인들의 저서도 주목 받고 있다.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우경화를 비판해온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자대 명예교수와 ‘영속패전론’을 발표하며 젊은 논객으로 떠오른 시라이 사토시 교토세이카대 총합인문학과 교수의 저서들이다.
특히 두 사람의 대담집으로 지난달 중순 출간된 ‘사쿠라 진다’(우주소년)는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 등 한국 때리기를 예견한 대목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책에서 패전의 책임을 부인한 채 대미종속 국가의 길을 걸어온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 가능한 국가를 꿈꾸며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한다.
온라인 서점 YES24에 따르면 이 책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1일을 기점으로 전달에 비해 판매증감률이 363.6%나 상승했다. 박우현 우주소년 대표는 “일본이 왜 이러는지에 대한 의도를 냉철하게 파악하려는 독자들의 수요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라이 교수가 쓴 ‘영속패전론’(이숲), 우치다 교수의 저서 ‘속국민주주의론’(모요사)도 이달 들어 판매량이 증가했다. YES24 관계자는 “일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한 고전 ‘국화와 칼’(을유문화사)의 경우도 7월 들어 판매 부수가 지난 3개월 대비 4배 증가하는 등 일본 역사와 사회를 들여다보려는 책들이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와 비슷한 성향의 관련 책들이 추천 리스트로 소개되며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아베는 누구인가’(돌베개),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효형), ‘일본과학기술 총력전’(AK), ‘위험하지 않은 몰락’(사계절) 등이다.
일본과의 갈등이 장기화 할 조짐에 따라 일본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차분하게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출판계의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가 태평양 전쟁 통사를 다루며 일본인의 모순적 특징을 분석한 ‘일본제국패망사’(글항아리)도 8월 초 출간을 앞두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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