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 자민당과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온도차
한국과 일본 의원들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의원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조치를 두고 강하게 충돌했다. 연 2회 개최되는 한일 3국 의원회의는 친목 성격이 강한 모임이지만, 최근 극심한 한일 갈등 상황으로 인해 시종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날선 공방전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한 목소리로 비판한 한국 의원들과 달리 일본 측은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자민당 소속 의원과 야당 의원간이 입장이 온도차를 보였다고 한국 대표단이 전했다.
방미 의원단이 이날 특파원간담회에서 전한 회의 내용에 따르면, 한국 의원들이 일본의 한국 수출 제한 조치와 화이트(백색) 국가 제외 검토가 강제 징용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한 보복조치라며 그 부당성을 주장한 데 대해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수출 물자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맞섰다. 일본 측은 또 대법원 판결이 1965년 국교 정상화에 관한 한일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을 꺼내며 "한국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격한 말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측이 한국의 전략물자 통제를 문제 삼는 데 대해 우리 측은 증거를 제시하라고 반박하면서 물자를 잘못 관리해 북한으로 넘어간 일이 발생한 것은 일본이라고 맞받아쳤다. 민주당 박경미 의원은 "일본 의원 중에는 '아베의 분신'처럼 도발하는 의원도 있었다"며 "일본 측이 먼저 거친(harsh) 얘기를 해 저희도 비슷한 수준으로 얘기하기도 했다"고 험악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회의 마지막에 한국 대표단 단장인 정세균 의원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데 공감하는 의원들이 박수를 치며 끝내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측 한 의원은 호응하지 않는 상황도 연출됐다고 한다.
특히 한국측의 설명에 가장 강하게 반발한 의원은 야마모토 고조(山本幸三) 의원으로 “한국과 합의할 것은 없다”고 몰아붙였다. 야마모토 의원은 지방창생장관을 지낸 8선으로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도 불린다.
한국 대표단은 지난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처리된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을 전달할 예정이었지만 전략적 판단에 따라 직접 전달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본 대표단에서는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자민당과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은 "어떤 분들은 징용문제와 보복이 연관된 것임을 전제로 말했다"고 전했고, 같은 당 김세연 의원은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목소리도 의회에 일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한일 의원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자 어느 편을 들기 어려운 미국 대표단은 난처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맨스필드재단 관계자는 회의장에서 "한일이 이런 문제를 갖고 다투면 불편한 것은 미국이다. 다투지 않고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를 본 미국의 마크 다카노 하원의원은 “질서를 지켜달라. 다투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세균 의원은 "미국 의원들은 한일 의원들이 너무 열을 올리는 상황이 되면 찬물을 한 바가지씩 끼얹으면서 회의를 원만하게 이끌고 노력했지만 내용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한국 대표단은 당초 주최 측이 이날 저녁 문화행사로 주최한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의 워싱턴 내셔널스전 선발 등판 경기를 미일 의원들과 함께 관람할 예정이었지만 불필요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취소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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